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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주명덕의 연을 더듬는 다소 느린 글

글 정윤희

주명덕 사진전: 연 蓮. PADMA/ 4.23–6.18/ 한미사진미술관

주명덕, 〈부여〉, 2014

연잎은 수많은 잎맥들이 중앙으로부터 쭉쭉 뻗어나 있어 그 자체로 완벽한 집을 이룬다. 왕성한 연잎은 수분에 길들여지지 않고 수분을 흡수하지도 않아 연잎에 맺힌 물방울들은 차돌처럼 매끈하고 단단해 보인다. 한창때의 연잎은 넓게 활짝 펴있고, 잎의 가장자리는 잎자루에서 뻗어 나오는 잎맥을 따라 날렵하게 주름져 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활짝 핀 연잎은 가장자리의 화려한 구불거림 덕분에 꽃처럼 아름답고, 또 꽃처럼 온전하다. 시원시원하고 널찍한 이파리들은 그 아래로는 커다란 그림자와 어둠을 드리우고, 위로는 광활한 세계를 받치고 있다.

‘연’과 ‘수련’은 다른 종의 식물이다. 연이 수면 위로 높이 떠서 잎과 꽃을 피우는 정수식물(挺水植物)인 반면, 수련은 물위에 떠서 꽃과 잎을 피우는 부수식물(浮水植物)이다. 동그랗고 매끈한 수련의 잎들은 무리지어서 수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어떤 화면에서는 손톱만한 크기의 잎들이 촘촘하게 연못을 채우고 있고, 성냥개비만한 작은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있다. 수련의 무리를 먼 거리에서 촬영한 작품에서는 수련과 물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고, 작은 잎들은 연못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보인다. 햇살을 받은 작은 잎들은 반짝거리고, 물결에 닿은 빛들은 잘게 부서진다. 그 순간 연을 가득 채운 연못은 이제 연못이 아닌 빛과 어둠이 부서지고 흩어져버린 평면이 된다.

때로는 ‘보는 행위’가 단어와 문장을 무색하게 할 때가 있다. 예리한 형상을 띠며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피사체 앞에서 둔탁한 단어와 거친 문장의 구조는 모두 거절당하고 만다. 여느 정신분석학자들은 우리의 사고가 언어의 법칙에 따라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언어에 편입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감정의 찌끼들이 생기며, 이는 무의식 속에서 억압되고 축적된다고 했다. 진정한 해방은 미처 말하지 못한 것, 말로 하기 애매한 것, 말 안 하려고 참았던것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날을 세운 감각과 감정들을 언어에 싣고자 애쓰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이다.

주명덕의 연들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은 일정의 구조와 원리를 반추하는 변화무쌍함이다. 모네의 연은 빛의 화려한 변주 속에서 피어나고, 주명덕의 연들은 어두움 속에서 그 변화가 더욱 잘 감지된다. 거리감을 달리하며 피사체를 촬영함으로써 작은 세부에서부터 숱하게 무리지은 모습을 담았고, 각 계절별로 가장 싱싱할 때와 힘없이 시들었을 때를 담았다. 연의 다양한 질감 역시 담았는데, 싱싱할 때의 꽃과 잎은 미세한 잎맥과 결들이 일일이 만져질 것 같다가도 시들면 얇은 종이처럼 말라버리고, 곧 손에 쥐면 한 줌 재처럼 부서질 것 같이 변해버린다. 스펙트럼이 넓되, 찬찬하게 펼쳐진다. 놀랍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며, 본래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고요하기도 하다. 차분한 흑백톤으로 시시각각 연들이 전하는 이미지들은 우리를 즐겁게 자극해준다.

튼튼한 줄기로 물 위에 높게 떠올라 꽃과 잎을 피우는 연들은 시들 때조차 기백이 있다. 줄기들은 뻣뻣하게 말라 잎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버렸다. 이제 아래를 향하게 된 잎들은 파삭 시들어버렸지만 여전히 잎맥은 힘이 넘치고 멋스럽다. 삶의 연륜을 담은 노인의 손에서 뼈와 힘줄이 도리어 도드라지는 것처럼. 반면 물 위에 떠 있는 수련들은 시들 때, 마치 물에 녹아들 듯 한다. 시든 이파리는 물에 젖은 채로 구멍이 숭숭 나다가 조금씩 쪼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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