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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남:성화(聖畵)에 담긴 삶의 환희

글 김정아

서봉남 〈운명하신 예수〉, 캔버스에 유채, 73×30cm, 1997영국 스코틀랜드 항구도시 스트란래어(Stranraer)의 시내에는 500여 년이 된 고딕 양식의 교회가 있다. 영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크게 줄어 교회가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자, 그 지역 장로교회 중 하나를 인수한 한 목사가 한국의 기독교 미술가인 서봉남 작가의 성화 작품 52점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2012년 5월 30일, ‘BONGNAM BIBLICAL MUSEUM OF ART’라는 간판을 걸고 개관한 ‘봉남성화미술관’은 현지인들과 방문객들에게 성서 미술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구약 성서의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신약 성서인 요한계시록까지 완성하고 보니 35년의 세월이 지나있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봉남 작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미술가의 맑고 건강한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향토 내음 가득한 동심(童心)의 세계
서봉남 작가가 본격적으로 직업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남몰래 키워 온 화가의 꿈은 꺾일 줄 몰랐고, 독실한 기독교 가문에서 성장한 그는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20대에 가족애를 주제로 한 동심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고, 30대부터는 기독교 성화라는 평생 숙원 작업에 몰두했으며, 40대에 들어서는 소설과 같은 풍경 연작을 선보이는 등 화업을 위한 도약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서봉남 작가의 전작을 관통하는 표현주의적이고 상징주의적인 화풍은 훗날 성화 연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젊은 시절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진갈색의 화풍과 육중한 마티에르에 큰 감동을 받았던 작가는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한국 고유의 선과 색을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가옥인 초가집의 아래로 쏟아진 곡선, 기와집의 위로 오르는 곡선, 두툼한 기와와 질그릇의 투박한 선, 동그란 밥상, 저고리 소매, 고무신 코 등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선들이 긴 세월을 지나 영글어진 두툼한 곡선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에서 보이는 암갈색, 한국의 지형을 나타내는 황토색, 순수하고 소박한 백의민족의 성격을 대변하는 백색이 겨레의 색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연구로 다져진 선과 색의 표현기법은 유년기의 추억과 만나게 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품었던 황토빛 꿈을 소환함으로써 인간적인 소박함과 활기 넘치는 생동감, 긍정적인 유희성에 매료되었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동심’ 연작을 발표하였다. 성서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천사에 비유하는데, 작가는 동심 속에 무수한 진실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 유치원의 보조교사로 봉사하며 2년 여간 어린이들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와 뗄 수 없는 어머니의 존재를 발견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을 황토색 대지에 비유한 화풍을 이어갔다. 이렇듯 순수한 자연 현상에 대한 서봉남 작가의 관심이 신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기독교 가정 속에서 움튼 예술적 삶의 표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로 승화시킨 구원의 기쁨
서봉남 작가는 1976년부터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그리고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기독교 미술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은 비단 신앙심이나 창작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종교와 예술과 작가 자신을 잇는 뚜렷한 신념이 필요한 일이다. 자칫 성서 내용의 행적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에만 치우치다 보면 예술적 가치가 소홀해질 수가 있고, 반면 예술적인 형식에만 집착하다 보면 종교의 무한한 사상적 깊이를 조명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뇌의 시간을 견뎌온 서봉남 작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곧은 신념과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로 성화를 제작해왔다. 그의 성화 속 시공간은 형태와 색만으로 표현해 낼 수 없는 무한한 신비의 세계이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지워진 화면에는 오랜 세월 작가가 연구한 흔적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서봉남 작가의 성화는 인물과 사건의 표현을 추상화시킴으로써 보편적 시각에서 자유분방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과 자신의 신앙 고백을 위한 내면의 목소리가 드러난다는 점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에서 성서의 사건을 단편적으로 그렸다기보다는 그 사건의 현장에서 조우한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담았다. 구상과 추상적 경계가 허물어진 표현 기법은 이러한 현장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시킨다. 또한 일반적으로 신비한 기조가 지배적인 성화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작가의 자유로운 관점을 드러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종교적 가치를 신앙적 체험과 결합시킴으로써 성서에 대한 이해 및 그 해석에 있어서도 주관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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