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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오토 딕스:사실적 재현을 넘어선 날카로운 시선

글 이정훈

《오토 딕스 - 사악한 눈빛(Otto Dix - Der Böse Blick)》
2.11~5.14 |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K20 미술관(Kunstsammlung NRW- K20 Grabbeplatz)

 

 

오토 딕스, 〈살롱 I(Salon I)〉, 판에 유채, 86×120.5cm, 1921, 이미지 제공 : easyDB

 

독일의 대표적인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화가로 알려진 오토 딕스(Otto Dix, 1891~1969)의 특별전 《오토 딕스 - 사악한 눈빛(Otto Dix – Der Böse Blick)》이 독일 현대미술의 중심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뒤셀도르프(Düsseldorf)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K20 미술관(Kunstsammlung NRWK20 Grabbeplatz)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22년부터 1925년까지 뒤셀도르프에서의 활동과 작업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와 더불어 본 전시장 맞은편에 마련된 2전시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목격했던 전쟁의 끔찍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판화 연작도 살펴볼 수 있다. 오토 딕스의 뒤셀도르프에서의 활동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표현주의(Expressionismus)의 작업 성향에서 벗어나 신즉물주의 경향의 초상화가로서 그의 예술가 적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립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시기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자화상을 비롯해 작가의 주변 인물을 담아낸 초상화, 그리고 당대 사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수채화와 동판화를 포함한 약 20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드레스덴에서 뒤셀도르프로
전시실에 들어서면 오토 딕스의 일생이 자세히 적혀있는 커다란 벽이 보인다. 이는 이번 전시가 뒤셀도르프에서의 활동과 작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인지시켜줌과 동시에 전시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의 역할을 한다. 전시는 그가 드레스덴(Dresden)에서 뒤셀도르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오토 딕스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자신이 살고 있던 드레스덴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 드레스덴 미술 대학(Staatlichen 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에 입학하여 자신의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코나드 펠릭스뮬러(Conrad Felixmüller, 1897~1977)를 포함한 몇몇 동료와 함께 사회 비판적 예술을 통해서 전후의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드레스덴 분리파 1919(Dresdner Sezession Gruppe 1919)’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오직 시각예술을 통해서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고,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회 운동을 주도하려는 동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그들과 예술을 통한 사회 접근 방식이 다름을 깨달았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와 작품을 판매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을 키워줄 역량 있는 갤러리를 만나지 못하면서 드레스덴에서의 생활에 지쳐갔다. 이후 오토 딕스는 미술 시장이 발달한 노르트라인 주의 뒤셀도르프로 자신의 작업 무대를 옮기고, 1921년 10월 뒤셀도르프에 정착했다. 당시 그의 재정 상태는 매우 열악했기에, 자신의 작업을 판매할 수 있는 상업 적인 전시를 갈망했다. 그러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전시 기회를 잡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정적 위기가 그의 목을 조르려던 찰나, 그의 작업은 당시 뒤셀도르프에서 주목받던 갤러리스트 요한나 이와(Johanna Ey)의 눈을 사로잡았다. 요한나 이와의 갤러리 ‘Junge Kunst- Frau Ey’에서 오토 딕스는 뒤셀도르프에서의 첫 작품 판매에 성공했다. 이후 요한나 이와와 지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며 뒤셀도르프에서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작업 생활을 이어나갔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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