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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논쟁',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일까?

글 권혁빈

갑작스레 고대사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 논란 때문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도종환 의원이 ‘사이비 역사학’에 경도되었다고 주장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 근거는 도종환 의원의 지난 의정활동에 있었다. 지난 5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에 의해 왜곡된 고려 국경선의 실체는?’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도종환 의원의 동북아역사특위 활동도 도마 위에 올랐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비난하며 사업을 취소한 것이다. 이러한 도종환 의원의 이력은 역사학계의 의구심만 키웠다.
도종환 의원의 감정적인 반응도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싸울 땐 싸우겠다”고 입장을 밝히며, “가야사 연구자 중에 일본의 돈을 받고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주장했다.¹ 이 한 마디 말은 역사학계에 대한 선전포고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도종환 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특정한 학설을 정책에 반영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나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이비 역사학’ 논란, 무엇이 문제일까?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은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고 표시한 것이 발단이 되어 역사학계 내의 논쟁을 넘어 역사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도종환 의원을 비롯하여 이 사업을 반대한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비슷했다.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적과 문헌연구를 통해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에 존재했음을 확인했고, 이 사실에는 더 이상 이견의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²
그렇다면, 재야사학과 역사학계의 표현대로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불리는 진영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그들이 낙랑군의 위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사학자 위가야는 그들의 논리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학자들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당시 일본 학자들이 고조선 땅에 세워진 한나라의 군현들을 일제가 지배하는 당시 한반도의 정치 상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던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일본학자들이 한사군의 성격을 ‘식민지’로 규정하게 된 배경이 되었는데, 마찬가지의 논리는 ‘사이비 역사학’을 추종하는 세력에게서도 나타난다. 한반도 땅에 타국의 식민지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 위치를 계속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³
문제는 이러한 역사인식이 정치와 결합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옛 고구려의 땅이며, 구한말이 지나서까지 한민족이 터전을 일군 땅이기 때문에 만주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있다. 도종환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한 세미나도 ‘국경선’을 주제로 한 것이고, 이는 ‘통일 이후의 영토분쟁’을 준비하겠다는 논리로 합리화되고 있다. 1979년에 발표된 위서 『환단고기』는 특정 종교단체에 의해 주장되고, 정치권에서 ‘위대한 한민족’의 근거로 활용된다.

 

 

 

 

 


1. 「도종환, 역사관 비판 반박 ‘싸울 땐 싸우겠다’」, 『한겨레』 신문, 2017년 6월 6일.

2. 물론 “독도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부분까지 짚으면 글의 내용이 주제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논쟁은 위가야,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역사비평』, 2016년 봄호(통권 114호), pp.238~261.을 참고할 것.

3. 위의 글, pp.245~246.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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