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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어디를 가리키나요?

글 백지홍

3차원인 지구를 2차원으로 표현한 세계지도는 모두 왜곡된 형태를 하고 있다. 각 지역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지구본을 봐야 한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과 한 가지 질문

여름의 문턱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그 중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이하 《예술이 자유가 될 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4.28~7.30)은 올해의 첫 대형 전시로서 부족함이 없었고 꽤 흥미롭게 감상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하듯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마주한 이집트에게도 근대화는 구체제의 저항과 외세의 침입에 맞서면서 달성해야 할 힘겨운 과제였다. 그리고 이집트의 예술가들은 수많은 고난이 함께한 시기를 예술로 표현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집트의 사회 참여적 성향을 띤 예술가들이 유럽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화풍을 받아들이고 ‘자유 예술’이란 이름으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에게 익숙한 식으로 표현하면 초현실주의 풍의 민중미술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정부 비판적 회화를 그리던 예술가가 범 아랍주의를 내세운 나세르 정권에서는 프로파간다 예술가가 되는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전시 자체의 흥미로움과 함께 나를 사로잡은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의 전시 소개였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근대 미술 중심 전시관이며, 《예술이 자유가 될 때》는 서구 중심에서 벗어난 근대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떠오른 질문. 동아시아에 자리 잡은 미술관에서 유럽과 마주보는 이집트의 이야기가(마리 관장의 고향인 스페인과는 정말 가깝지 않나) 서구에서 벗어난 시선을 보여주는 ‘비서구’의 첫 번째 예시가 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비서구와 아시아

마리 관장이 보여준 서구(유럽) 대 비서구라는 인식은 서구 중심의 근대화를 진행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 그리고 유럽의 과실이 이식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이들 ‘제1세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즉 ‘비서구’는 제1세계가 개척,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와 유사한 것이 ‘아시아’다. 지리학적 명칭으로서의 ‘아시아’는 그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20세기에 중점적으로, 그리고 오늘날까지 종종 사용되는 의미에서 아시아는 비서구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시아는 이른바 유럽과, 제국주의 시절 유럽에 종속된 아프리카를 제외한 ‘구대륙’의 모든 문명권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¹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이러한 시선은 그 자체로 이미 왜곡되어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유럽’이 독립된 대륙인가? 유럽과 아시아는 다른 대륙들과 달리 그 경계가 희미하다. 모스크바 동쪽의 우랄산맥과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북부의 코카서스 산맥을 기준으로 문화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기준으로 중국 문화권과 인도 문화권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터키와 조지아는 유럽문화권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리적인 조건으로 보면 유럽과 아시아는 분리된 대륙이 아니라 ‘유라시아’라는 하나의 대륙에 속해있다. 

 

 


 

1. 문명간 교류가 활발했던 유라시아 대륙, 아프리카 대륙을 구대륙으로,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신대륙으로 표현하는 관례를 따랐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기 전에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에는 토착 문명이 존재했으니 신대륙, 구대륙이라는 분류 역시 유럽중심적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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