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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지워지고 덧붙여진 회화, 뒤늦게 도착한 언어

글 장서윤

그림은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한다. 다른 방식으로. 미처 언어로 남지 않고 감각과 인상으로 다가오는 그 말들은 그렇기에 온 몸 구석구석 더 오래 각인되는지도 모른다. 동시대 작가 중에서도 꾸준히 회화에 천착해온 이제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이 그렇다. 모호하고 희미하지만, 도달하지 못한 그 거리에 자리한 풍경과 인물은 상처처럼 찌르듯 다가온다. 이제 작가는 달아나는 사물들, 인물들을 캔버스에 정박시킴으로 무엇을 얻고자 한 것이었을까. 얼마 전 갤러리조선에서 막을 내린 이제 작가의 《손목을 반 바퀴》(5.2~5.26) 전시장 방문 이후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을 견디지 못해 직접 이제 작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것이 이야기였는지 그림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제, 〈손목을 반 바퀴〉, 캔버스에 유채, 91×116.8cm, 2017


 

 

2005년 첫 개인전 후 《손목을 반 바퀴》까지 총 7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거의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는데요, 회화 작가로서 쉽지 않은 템포라 생각합니다.

일단 작업이 시작되고 나면 몇 달을 그 리듬 안으로 들어가 집중해서 그립니다. 어떤 상황에 몰입할 때, 자신을 구석에 몰듯이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있죠. 그게 제 작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작업의 시작이기도 해요.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시간이 작업시간보다 길 때도 있고요. 그만큼 공간을 비롯한 어떤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상태가 되면 그림은 빠르게 그리는 편입니다. 운동 선수가 시합을 준비하듯이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으로 리듬을 만들어 놓은 다음 링 위에 올라가서 막 싸우는 거죠. 매번 그 링 위에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요(웃음). 요새는 작업할 때 마라톤 하는 것처럼 긴 템포를 가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손목을 반 바퀴》 작업과 기존 작업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금까지의 작업에서는 현실 이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발언하고자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참고할 수 있는 태도, 말 혹은 자료들이 있었던 셈이죠. 그리고 일상의 풍경에서 어떤 리얼리즘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번 전시는 무엇인가 그려내야겠다는 생각 이전에 굉장히 단순한 지점부터 시작했습니다. 토기, 여자, 몸, 주변과의 관계, 이런 단어들을 먼저 떠올렸고, 이걸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회화의 고전적인 방식을 좀 더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추상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손목을 반 바퀴》 전시 리플릿을 보면 ‘여러 상황에서 익숙하게 쓰지만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는 동작이나 움직임 사이의 형태가 주는 감각적인 풍부함이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과 닮았다’고 설명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전시 제목이 이미지적으로, 혹은 시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회화라는 장르에는 감각으로 기억하는 경험들이 서로 맞물리고 충돌하면서 이미지로 드러나는 고유의 언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안에서 몸의 움직임으로 어떤 상황이나 풍경들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이전에도 시도를 했었죠. 일상에서 쌓여가는 이미지 혹은 상(想)들을 마치 그림카드처럼 눈앞에 늘어놓고, 연결하고, 해석하는 것이 제 즐거움입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온전한 문장이나 구체적인 지시어보다는 마치 시어처럼 함축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들이 저의 구체적인 감각과 기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상에서 사진이나 메모로 기억하고 싶은 풍경, 사건, 인물들을 기록해요.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회화로 낯설게 발화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손목을 반 바퀴’라는 제목은 한숨 쉬는 걸 묘사하는 손의 동작을 적어놓은 노트에서 가져온 것인데요, 제 생각에 회화에서 ‘시적’이라는 건 마치 텍스트가 하나의 이미지를 생성하듯이 이미지가 어떤 이야기로 건너가는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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