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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숙 : 속초적인, 너무도 속초적인

글 박인식

 

김종숙, 〈손Ⅱ〉 캔버스에 유채, 53×33.4cm, 2016속초에서는 사물을 보고 부르는 방식이 남다르다. ‘속초적’이라 할만큼 속초만의 시각과 속초만의 표현 언어가 있다. 김종숙 작가는 그 속초의 ‘속초적’ 삶을 조형언어로 쓴다. 그는 속초를 그려냄으로써 여느 사람으로는 본 적도 느끼지도 못한 속초를 찾아내고 있다. 오직 그의 붓질을 따라 속초는 ‘속초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속초는 지금의 속초이면서 지금의 속초가 아니다. 공간적으로는 지금의 속초이지만, 시간적으로는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그는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2세다. 속초에서 태어나 지금껏 온전히 속초를 살아왔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분단의 역사와 최전방 경계에 뿌리를 옮겨 심은 소수자들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북에서 가지고 온 건 몸뚱아리 하나뿐. 그 몸으로 타지로서의 속초를 자신들의 삶의 영역으로 만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냈던가. 하지만 속초는 그들에게 ‘설악’산이라는 대지의 심장과 ‘동해’라는 바다의 허파를 주었다. 이 지점에서 김종숙 작가는 화가의 눈을 뜬다.
그의 어버이 세대들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든 소수자라면, 그는 산 너머 서쪽에서 불어온 대량소비시대의 바람이 동쪽 바닷가로 휩쓸어버린 이 시대의 소수자다. 대부분의 속초 땅이 전국 최고 휴양관광리조트로 개발되면서 청호동 아바이들뿐만 아니라 속초의 원주민들은 오랜 삶의 터를 외지인에게 내주고 정신적으로 유랑하는 이방인이나 난민인 디아스포라로 살아간다. ‘속초적’ 삶의 원형은 외지인들의 볼거리로 전락하여 상품화되거나 대규모 휴양관광 시설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되고 말았다. 숨어버린 속초의 디아스포라적 삶은 김종숙 같이 진정의 절정으로 올라선 작가가 있어 미학의 한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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