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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 ART 1979-1994 ⑦

1980년, '발언 미학'의 시각언어 탄생 Ⅲ

글 김종길

 

 

‘주관적’ 극사실주의의 등장

임술년 회원들, 사진 왼쪽부터 이명복, 천광호, 이종구, 박홍순, 전준엽, 송창, 황재형이다. 사진촬영 이용남. 19821978년 제1회 《동아미술제》는 여러모로 화제였다. 중앙대학교 출신의 변종곤이 〈1978년 1월 28일〉¹이라는 활주로 그림으로 대상을 받았고, 이상원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로 동아미술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동아미술제》 수상작 발표가 나니 한국 화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² 
서른에 그린 변종곤의 작품은 극사실주의 화법이었으나 ‘주관’을 배제해 온 서구의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의 그림은 그 시대가 처한 위기적 상황을 보여주듯 불안과 위태로움과 어떤 경계 밖의 절망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 미학에 더 가까웠다. 텅 빈 활주로는 미군이 철수한 비행장이었고 그것은 살풍경의 현실이었다. 사선으로 휜 활주로와 철책, ‘KEEP OUT’ 푯말이 걸린 경계라인, 방독면, 땅에 처박힌 비행장 안내표지판, 널브러진 가방, 켜지지 않은 사이렌 조명. 그런데 사람은 온데간데 없다. 색채의 구성도 검푸른 활주로에 노란 안전선과 누렇게 마른 땅이 도드라진다. 그림이 풍기는 전체적인 느낌은 그래서 핵전쟁 이후의 미래를 징후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변종곤은 “유신시절 대구지역에서 철수한 미군공항의 황폐해진 모습을 화폭에 그린 것 자체만으로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혔고,³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이문희 주교의 신원보증을 받아 미국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의 미학이 리얼리즘과는 다른 길에 서 있을지라도 1978년의 〈1978년 1월 28일〉이 일으킨 파장은 분명히 그 시대의 ‘시대언어’로서 존재할 것이다.
이상원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바 없는 그의 작품도 매우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그는 “바퀴자국이 깊게 파인 흙바닥, 추수가 끝난 논바닥, 버려진 포대, 던져져 있는 그물망, 해진 마대,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노인의 얼굴 등 용도 폐기된 물건이나 우리가 외면해온 모습들을” 집요하게 그렸고, 그래서 ‘인간의 본질’과 맞닥뜨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⁴ 극사실 혹은 포토리얼리즘에 가까운 변종곤과 이상원의 회화는 화단에 새로운 분위기를 몰고 왔다. 그들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그들의 등장이 하나의 사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백색 단색주의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국내외 정치· 사회 ·경제 상황이나, 유신 군사독재체제가 빚어내고 있던 체재 내 갈등과 피로감, 그리고 격동하는 사회 현실은 그 나름의 표상형식을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 작품 〈1978년 1월 28일〉은 1978년 작품으로 130×324cm 크기이며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2. 김용운, 「샤넬향수 든 인디언, 가식적 세상 비꼬다」, 『이데일리』, 2015.1.23. 참조.
3. 김용운, 위의 기사 참조.
4. 이선주, 「무시당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 『topclass』, 2015년 1월호 참조.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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