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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눈의 함정'과 아름다운 프랑스

글 천수림

자끄 앙리 라띠그 : 라 벨 프랑스(La Belle France)!
4.18-8.15
KT&G 상상마당 갤러리 4, 5F
 

자크 앙리 라띠그, 〈에덴 록 레스토랑의 비비〉(부분), 앙티브, 젤라틴 실버 프린트, 24×30cm, 1910 이미지 제공 : KT&G 상상마당

그리스어로 ‘시간’이라는 뜻의 ‘크로노스(Chronos)’는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신의 이름, 크로노스와 같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의 그림 〈시간이 진실을 발견하다〉(1734)에서 크로노스는 날개 달린 모습으로,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1936)에서는 아들을 잡아먹는 잔인하고도 슬픈 노인으로 묘사된다. ‘모든 피조물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신’과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은 그래서 통한다.
프랑스의 사진가 자끄 앙리 라띠그(Jacques Henri Lartigue, 1984-1986)는 일곱 살 생일에 아버지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은 후 평생 자신과 부유했던 가족의 일상을 사진과 일기로 기록했다. 그에게 사진은 ‘시간’과 동의어였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행복한 시간과 아름다운 시절을 동결시켜놓고 싶었던 그의 욕망은 ‘크로노스신’을 거역하는 것이었을까.
어릴 적 그는 시간과 싸우는 자신만의 놀이로 ‘눈의 함정(Piēge de l′oeul)’을 개발했다. ‘눈의 함정’은 라띠그가 어릴 적 만들어낸 놀이로, 순간적으로 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 사진 속에 가두는 것을 말한다.
파리시립 푸흐네이 도서관(Conservateur à la bibliothèque Forney à Paris) 수석 큐레이터인 띠에리 드빙크(Thierry Devynck)는 “라띠그에게 사진은 마치 잼과 같은 일종의 저장 장치였다. 실제로 그는 프랑수와 라이헨바흐(François Reichenbach)의 영상에서 ‘요리사처럼 통조림을 만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럽 안에 앵두를 넣듯, 은염에 기억을 담는 것이다. 라띠그는 가증스럽고 일반적인 부르주아들처럼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금화인 이미지들을 모아 쌓아 두었다.”라고 말했다.
KT&G 상상마당이 마련한 자끄 앙리 라띠그 회고전 《라 벨 프랑스!》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개최하는 전시로, 프랑스 자끄 앙리 라띠그 재단(La Donation Jacques Henri Lartigue)과 알랭 귀타르 갤러리(Galerie Alain Gutharc)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KT&G 상상마당 20세기 거장 초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20세기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롭고 우아한 상류계층의 일상, 아내를 비롯한 매혹적인 여인들의 패션, 190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비행기, 자동차 등 신기술과 요트, 스키, 스케이트, 수영 등 상류층의 휴가문화를 엿볼 수 있는 200여 점의 흑백사진과 초기 천연색 사진술 중 하나인 오토크롬 기법의 컬러필름, 알랭 귀타르 갤러리(Galerie Alain Gutharc) 소장본인 비비(Bibi)의 모습이 담긴 빈티지 컬렉션도 볼 수 있다.
라띠끄는 여권의 직업란에 ‘화가’라 썼다고 한다. 그에게 사진은 평생 동안 즐긴 행복한 놀이였다. 현재 사진사에서는 찰나적 순간으로 유명한 ‘까르띠에 브레송 이전의 까르띠에 브레송’이라고 인식할 만큼 ‘프레임의 천재’라 불리며 다방면으로 조명 받고 있다. 그의 조형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라띠끄는 1963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사진부장인 존 샤콥스키(John Szarkowski)에 의해 소개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신화 속 크로노스처럼 노인이 된 그의 나이 69세의 일이었다. 비록 육체는 노인이 되었지만 그의 사진 속에는 ‘카메라를 든 천재소년’의 눈으로 본 ‘프랑스’가 담겨 있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의 속성을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중)
자끄 앙리 라띠그가 증언한 시간은 우아하다. 마치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이기적이고도 순수한 눈으로 채집한 프랑스는 품위 있으며, 사치스럽다. 전쟁이 지나가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기도 하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그에겐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의 꿈대로 사진 속 ‘아름다운 시간’은 그 시절에 멈추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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