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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수행이 침묵한 것

글 신양희

조은지 : 열, 풍
4.27-5.21
아트 스페이스 풀

 

조은지, 〈수행하는 사람들〉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 아트 스페이스 풀

 

조은지의 개인전 《열, 풍》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삼았지만 집단의 고통과 기억과는 거리를 둔다. 작가는 1965~66년 인도네시아의 학살, 1970년대 캄보디아의 학살과 관련한 장소를 방문하고, 생존자들을 만난 기록을 바탕으로 이 전시를 꾸렸다. 그러나 이는 학살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하는 기록과는 다르다. 그는 역사, 서사, 언어, 집단의 반대편에서 탈역사, 탈서사, 신체, 개인의 시선을 구원하고자 시도한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학살에서 생존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이지만, 정작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생존자의 신체와 얼굴은 확대되었음에도 부분만을 볼 수 있고, 흔들리는 카메라가 그들의 눈빛, 몸짓에 집중하도록 하지만 그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짐작될 뿐이다. 이와 달리 ‘CAPITAL’이 적힌 컨테이너 앞의 마임이스트들은 생존자들의 고통을 대리하는 듯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카메라는 이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포착하면서 어떤 차이를 드러내지만, 생존자도 마임이스트도 신체로만 가시화될 뿐이다. 영상과 짝을 이룬 내레이션에서는 이들에게 ‘수행’이라는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한층 더 탈역사화를 시도한다. “죽느냐 수행하느냐, 그것이 문제다.”라 질문하지만, 결국 수행도 죽음처럼 숙명과 같다. 더군다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주체의 의지는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버려 공통의 기억과 고통은 사상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들이 처한 역사의 이면 혹은 본질을 마주하는 것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낀 듯하다. 수행과 수행자라고 상정한 개념은 시대와 역사를 초월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한 듯 보이지만 탈역사화로 인해 오히려 고립을 자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으로 이들 대상에 대한 탈역사성은 〈낙하와 부활에 관한 감정적인 케이스〉 1, 2에서도 드러난다. 자연으로만 남아 있는 학살의 장소를 흔들리는 영상으로 표현하거나 소리를 채집하는 정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장소든 현재 존재하는 그 자체가 어떤 역사나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국가폭력과 역사가 이들에게 학살에서의 생존을 경험하게 했다. 작가는 그 역사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오히려 역사를 지워버렸으며, 잔인한 역사를 증언해줄 생존자들에게서 무한한 거리를 둬버렸다. 그가 예술 작업으로 채택한 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다. 왜냐하면 생존자들은 그 역사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을 역사의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내었던 또는 살아내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모습에 더 공감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개인들을 만난 원인 혹은 출발이었던 과거의 그 역사에 대해 침묵해버림으로써 이들 존재는 탈맥락화되어 버릴 수 있다.
2014년에 그린 드로잉 연작 〈무제〉는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서의 학살과 직접적인 연결은 없다. 그런데도 작가는 이들 작업을 전시의 배후에 배치해 두었다. 이 드로잉들은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무기력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전시 서문은 밝힌다. 드로잉에는 ‘불바람’이라는 글자와 실제로 그 동작을 실현하는 사람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이 전시의 개념이기도 한 수행하는 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 현실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역사의 참사를 소재로 삼았다. 이 전시는 당시 참사를 겪었던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그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였을 뿐, 그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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