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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김경호의 사경 외길

글 백지홍

〈감지금니(비천도에 공양게)〉, 43.4×30.2cm, 2003전통을 잇는다는 것

외길 김경호. 그의 호만큼 그의 인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외로이 그리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김경호 작가가 있었기에 수백 년간 끊겼던 고려사경의 맥은 되살아날 수 있었다.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인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해왔다.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인류가 만들어낸 문화를 이어받아 자신의 관점을 더해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는 개인의 일생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수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삶은 인류의 탄생 이래 전통을 이어온 결과물이다. ‘오늘’을 사는 이는 언제나 ‘과거’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때로는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이 끊기기도 한다. 천재지변, 외적의 침입 등의 충격이 공동체를 덮칠 때뿐만 아니라, 지배층의 변화와 같은 내부로부터의 충격 역시 전통의 맥을 끊는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변화는 귀족 문화와 불교 문화의 단절을 의미했다.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귀족 불교 문화인 고려사경 역시 그 맥이 끊겼다. 세계제국 원나라에서 고려사경과 사경승을 수입해갔을 만큼 불교 예술의 극치를 이뤘던 고려사경은 제작된 것만 수만 권에 달했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현재 수백 권의 유물만이 전해질 뿐이며,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되던 제작 노하우는 사라지고 말았다.
고려사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고려불화보다 훨씬 많은 양이 제작되었으며 고려청자보다 고귀하게 여겨졌던 높은 완성도의 고려사경은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되었다. 당대 기록물로서, 혹은 종교 경전으로서 연구는 이어졌지만, 불경이 왜 그러한 형태로 시각화되었는지 사경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눈앞에 거대한 산이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지도는 세월 속에 사라졌다. 이것이 김경호 작가가 첫발을 내디딜 때의 상황이었다.

 


 

예외적 개인 김경호

어떤 현상에서 개인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은 입체적 사건을 납작하게 만들곤 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경을 말할 때 김경호 작가를 중심에 놓지 않고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경에 천착해온 외길 김경호 작가의 발자취가 곧 한국 사경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과한 포장이 아니다. 현대 한국에 고려사경의 맥이 이어지는 것은 온전히 외길 김경호라는 예외적인 개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경을 향한 김경호 작가의 활약은 말 그대로 전방위적이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사부터 시작했다. 사경 유물을 보관 중인 곳이라면 직접 찾아가 실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하고 기록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사경 유물 연구는 표지와 변상도 그리고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는 발원문2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이에 반해 김경호 작가는 유물의 전체를 살피며 금니와 은니의 사용방법, 도상 표현방식의 변화, 종이 등 재료와 기법의 특성을 기록했다. 이미 오랜 기간 서예 작업을 이어온 그였기에 사경을 학술적으로만 접한 이들은 알아차리기 힘든 금니와 은니의 비율, 금박이 떨어져 나간 원인 같은 실기 문제들을 예리하게 살필 수 있었다. 유물을 접하게 되면 한 작품 당 100컷 이상의 사진 기록 남기기를 지속하다보니, 그는 사경 작가인 동시에 국내 최고의 사경 유물 전문가가 되었다. 김경호 작가는 지금까지 조사한 사경 유물에 대해 설명하며 “관광차 잠시 서울에 들른 이가 말하는 서울과, 서울 골목골목을 누빈 이가 말하는 서울이 같을 수 없다”고 비유한다. 어느새 그는 사경의 골목골목의 모양새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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