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IMAGE&ESSAY

소셜 픽션

글 허우중

허우중, 〈대화〉, 캔버스에 유채, 195×130cm, 2013큰 사고가 터졌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의아해 도무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지만 실제로 사고가 터졌다. 온종일 사고 소식이 뉴스를 타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니 관심이 무슨 자석마냥 그리로 향하게 된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사이, 다른 사고 뉴스가 무슨 전주곡 들리듯이 들려온다. 저 전주곡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흡사 부풀어 오르는 풍선 속에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다는 기분이다. 다음 번에 터지는 풍선 속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분명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슨 연유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인터넷을 뒤져보고 관련 도서도 한번 읽어보지만 금세 아득해지고 만다. 별거 아닌 줄 알았건만 하나의 사건은 거미줄처럼 다른 사건과 엮여 있고 그 끝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잡초인 줄 알고 뽑으려 했는데 온 땅이 들썩인다. 뿌리가 보이나 싶었는데 금세 다른 곳에 고개를 내민 새 잡초를 발견한다. 전주곡은 이제 여기저기에서 사정없이 들려오고 풍선 안에는 더 이상 공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내가 아니라 그래도 다행이다, 내 가족이 아니라 그래도 다행이다, 내 친구들이 아니라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아니길,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이 저 풍선이 이제 터질 것 같은데 그래도 아니길 하늘 높이 올라간 주사위에 빌어본다. 터질 땐 터지더라도 그래도 왜 터지나 알고나 싶어 답을 찾아본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아 내가 답을 정해 놓고 찾는 게 쉬울 것 같은 유혹도 든다. 내가 아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적어도 옳은 것에 근접한다고 믿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역시 흑백 논리로 너무 쉽게 세상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렇게 나누어야지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런데 이 사람의 사정을 듣고 보니 무작정 욕할 것이 못 됐다. 도리어 말문이 막히고 내 알량했던 태도와 수박 겉핥기식으로 쌓아 올린 지식의 얄팍함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얼른 외면하기로 한다. 알 수가 없다. 미궁 속에 갇혀 멀미가 나는 것 같다. 미궁이 행여나 나를 집어삼킬까 두려워진다. 하나하나 보면 정말 구체적이고 명확한 거 같았는데, 한두 발짝 뒤로 물러나면 어느덧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실 세계가 내 눈앞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볼 땐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가까이건 멀리건 비극처럼 보여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럴 땐 불가사의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꼭 광활한 우주의 공간이나 나노입자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불가사의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가 공룡을 만나고 미래로 넘어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몰아봐야만 공상 과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은, 이 사회는, 그리고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래서 종종, 아니 자주, 픽션처럼 다가온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