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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미지 훼손과 미신의 연출

글 김정현

추상
9.1-9.30
합정지구


 

이미지를 재가공하는 일은 어느 틈엔가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문가용 편집 툴의 사용법을 모르더라도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누구나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다. 이제 DIY의 정신은 집안 인테리어나 정원 가꾸기를 넘어 가상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반응해서 예술에서의 독창성을 새롭게 정의하며 예술가를 DJ와 프로그래머에 비유하는 이론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추상》전의 기획자 김시습이 참여 작가를 호명하며 “파운드 푸티지와 파운드 오브제를 작업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소개하고, 이들에게 ‘추상’, “환속의 흐름으로부터 이미지를 떼어놓는 행위나 작용”을 요청한 것은 그 자체로 특기할 만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 전시의 초점은 사회적 변화에 이념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있다. 쏟아지는 이미지의 시대는 일단 부정적으로 정의된다.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양상은 전근대적 비합리성을 강화하는데, 동시대의 반 지성주의에 대응하여 이 전시는 이미지의 보수적 통제가 아니라 ‘추상’의 방법론을 제안한다. 주로 회화의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과 결부되거나 형식주의로 환원되며 모더니즘 미학의 핵심을 구성해온 추상은 동시대 예술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추상》전은 그 가능성을 우선 매체의 전환에서 찾는 것처럼 보인다. 즉, 회화가 아니라 영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전시 작품 중에 오브제 설치가 포함되어 있지만, 여전히 영상은 이 전시의 중요한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조각적 제스처는 영상 매체의 추상성을 강조한다. 합정지구 전시장 1층의 양면 윈도우는 권세정과 최윤의 ‘디스플레이’로 장식된다. 권세정의 디스플레이는 〈언커버리얼리티1/4〉(2017)의 일부로서 모니터에 재생된다. 반면 최윤의 〈창문그림액자 F타입: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전시 리모컨〉(2017)은 영상이 아니라 오브제 설치이지만, 모니터 샘플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는 선명한 자연 풍경을 벽 시트지로 대체하고 그 앞에 리모컨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영상을 암시하기에는 충분하다. 권세정의 디스플레이는 전시장 안으로 이어진다. 데스크탑 모니터에 재생 중인 화면보호기는 조각 퍼즐처럼 보이는데, 웹에서 발견한 어느 범죄 피해자 여성의 사진을 가공한 것이다. 보호기를 해제하면 바다 풍경이 뜬다. 이렇게 바탕화면 용도로 제공되는 고화질의 기본 이미지는 작가가 화면보호기용으로 편집한, 혹은 ‘훼손한’ 불법 유통된 이미지와 대비된다. 나란히 전시된 최윤의 〈비너스의 탄생〉(2017)에도 바다 이미지가 이어지는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합성된 바다 영상에서 파도 거품은 화면을 전환시키는 와이퍼 역할을 한다. 이렇게 권세정과 최윤은 ‘이미지의 훼손’을 거쳐 혼성모방에 다가가지만, 이는 더 이상 B급 패러디가 아니라 현대적 시각 경험을 대표하는 표상이 된다.
임영주의 〈총총〉(2017)은 우주 탐사선에 관한 기록 영상에 명상적인 내레이션을 더해서 우주라는 미지의 존재와 소통하려는 인류의 욕망을 환기한다.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내레이션은 최첨단 과학 실험의 종교적 이면을 노출하는 주문이다. 김웅용의 〈Junk〉(2017)는 1992년 남한에서 벌어진 휴거사태를 중심으로 종말과 부활의 서사를 둘러싼 파운드 푸티지와 연출 영상을 접합시킨다. 블루스크린 위의 카운트다운으로 시작하는 영상은 숫자의 변화를 채널 이동으로 연결시키며 파편적인 이미지를 조합한다. 그중 두 편의 애니메이션은 옴 진리교 홍보 영상 속 초능력자 교주와 〈드래곤볼〉의 초사이언인을 보여준다. 여기서 비합리적인 믿음의 구조는 애니메이션의 허구적 서사와 실제 사건의 교차 -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악몽을 통해 드러난다. 임영주의 〈총총〉에는 〈아기공룡 최윤, 〈비너스의 탄생〉, 단채널 영상, 14분, 2017, 사진: 홍철기, 이미지 제공: 김시습둘리〉의 빙하기 장면이 사용되는데,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배경 컷만 삽입됨으로써 저화질 기록 영상의 실제성과 애니메이션의 허구성이 교란된다. 임영주와 김웅용은 실제와 허구를 혼합하고, 시각 이미지뿐 아니라 사운드(더빙, 효과음)의 편집을 통해 실제를 구성하는 ‘효과’에 주목한다. 이들은 초월적 환상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미신을 구축하거나 해체하는 장치를 연출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탐사라는 영상 예술의 역사적 맥락 외에, 기획에서 문제제기한 ‘환속화’하는 사회에 대한 반응으로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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