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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서울 미스테리 투어

글 윤원화

김희천, 〈홈〉, 싱글채널 비디오, 40분, 2017

관객의 위치

전시 공간은 영상 작업을 보기에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는 환경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언제나 이미 상영 중인 영상과 마주치게 된다. 어지간히 인내심이 있는 관객도 영상이 끝을 지나고 다시 처음부터 루프되어 중간에 보기 시작한 지점에 이르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개는 이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성된 것이라는 감이 잡히면 관람을 중지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굳이 끝까지 보거나 심지어 반복해서 보는 것은 시각적으로 눈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거나, 또는 이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잘 서지 않을 때다. 가끔은 무슨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별로 길지도 않은 영상을 몇 시간씩 계속 보게 되기도 한다. 김희천의 〈홈〉은 꽤 오래 보았다. 여러 번 보다 보면 더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작업을 보는 왕도인지 아니면 제대로 함정에 빠진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이처럼 관객이 자기 위치를 판단하는 것, 어디서 무엇을 볼지결정하는 것은 특히 김희천의 2017년 작업들을 대할 때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그의 작업이 점점 더 관객의 위치를 중심에놓고 조직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김희천의 작업은 언제나 보는 사람의 문제를 다루지만, 2015년 초기 삼부작에서는 이것이 대체로 작가 자신과 세계 사이의 문제로 그려졌다. 말하자면 눈이 자신의 능동적인 행위 능력을 스크린에 위탁해 버린 상황, 어쩌면 세계 전체가 자신의 존재를 스크린 이미지에 위임한 듯한 상황 속에서, 보는 사람이자 무언가 보여줘야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곤경을 스크린 상에서 반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상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로 수용되고 심지어 인기를 끌면서 작가 자신에게 불쾌할 정도로 들러붙게 되자, 이후 작업은 여러 가지 형태로 간격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되었고, 이는 〈멈블〉과 〈홈〉으로 이어지는 2017년 작업에서 상당히 정교한 구축의 기술로 발전했다. 여기서 영상이 상영되는 장소는 스크린 속으로 되먹임되어 미묘하게 다른 판본들로 증식되고, 그럼으로써 스크린과 마주한 관객을 실제와 가상으로 겹겹이 중층된공간 속에 가둔다. 영상은 시각적 주체가 시각적 대상을 자신과 분리된 것으로 객체화하는 습관을 거스르면서, 작가에게서 떨어져 나와 관객에게 들러붙는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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