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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폴 고갱, 매혹적인 원시성

글 서동희

폴 고갱, 〈마나오 투파파우(죽음의 혼이 지켜본다)〉황마로 표구된 캔버스에 유채, 73×92cm, 1892 ©Albright-Knox Art Gallery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폴 고갱(Paul Gaugain,1848~1903)의 회고전 《고갱, 연금술사(Gauguin, l’alchimiste)》가 파리 그랑 팔레(Paris Grand Palais)에서 2017년 10월 11일부터 2018년 1월 22일까지 열린다. 고갱은 잘 알려진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조각, 도자기, 장식미술, 그래픽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예술가였다. 《고갱, 연금술사》전에는 그의 회화 54점, 세라믹 29점, 조각과 오브제 35점, 나무 조각 14점, 67점의 판화, 34점의 데생을 포함하여 총 230점 이상의 작품이 공개되었다. 시카고미술관과 오르세미술관의 풍성한 소장품들을 한데 모아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조형예술의 표현 장르에 있어서 어떠한 한계도 가지지 않았던 대가로서의 면모와 종종 저평가되어왔던 도예가와 조각가로서의 고갱을 만날 수 있는 값진 기회이다.

 

후기 인상주의자들과 폴 고갱

통상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로는 폴 고갱,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과 함께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로도 분류되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를 포함한다. 고갱은 후기 인상주의자로 대표되는 이 4인의 화가 중 가장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1890년 고흐 사망 이후, 1891년 쇠라, 1903년 고갱, 1906년 세잔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는데, 특히 고갱이 사망한 1903년 이후로 이들을 기리는 수많은 전시와 출판물 발행이 잇따른다. 후기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910년 미술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프랑스의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는 전시 《마네와 후기인상주의(Manet and Post-Impressionism)》를 기획하면서 처음으로 세간에 사용됐다.

19세기 말, 예술의 자율성 이념을 실현한 인상주의가 색채 및 시지각 등의 순수 조형 개념을 강조하며 모더니즘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나 인상주의가 지나치게 망막의 자극에 의존하고 내면적, 심리적 표현이나 내용에 소홀했던 점에 한계를 느껴 후기 인상주의가 발생하게 된다. 인상주의에서 소멸된 형태감, 내용, 상징성, 문학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몇몇의 대표 작가들에 의해 1880~1900년경 시도됐다. 후기 인상주의는 20세기 장르 미술의 많은 양식들과 마찬가지로 전 단계 미술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후기(post)라는 접두어가 말해주듯 이 역시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하며, 고갱도 인상주의에 가담하여 아마추어 일요화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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