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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섭 &남영희 지월·상상전

글 한재원, 고충환

한영희, 남영섭 작가

2000년 개관 이후 다양한 장르의 중견 및 원로 작가 초대 개인전을 개최해온 영은미술관에서 한지 조형 및 회화 작가로 알려진 한영섭, 남영희 작가 초대전 《池月·相相展(지월·상상전)》을 개최한다. 이 두 작가는 부부라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한지를 재료로 조형 활동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대표 한지회화 작가인 한영섭과 한지의 변형 회화 작가로 알려진 남영희 작가의 근작들이 공개되는 이번 초대전을 통해 두 작가가 걸어온 50여 년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자.

한영섭론 - 바람과 서리꽃, 아름다움을 전이(轉移)하는 신체

글 한재원 문학박사·미술사학

20세기 탈재현적 미술운동은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그 영향은 7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주어 이른바 ‘단색화’ 또는 ‘단색조 회화’로 지칭되는 일군의 추상회화 양식을 낳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화단을 풍미했던 단색조 회화는 캔버스 위에서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신체 행위에 의해 세계와 자아, 객관과 주관, 물질계와 정신계가 합일을 이루는 물아일체의 체험을 회화예술의 궁극적인 귀결점으로 삼는다. 작가의 권위가 폐기되며, 비개성적 익명성을 부각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탈권위와 익명성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특징이 없는 것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은 특징이 없다는 언설밖에 없다. 이 지점부터 단색조 회화는 미술이기에 앞서 하나의 헤게모니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의미 없다”가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웃지 못할 슬로건이었다면, 이러한 동어반복에 대해 한영섭은 홀로 타자(자연)의 구조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천착해왔다.
한영섭의 작업에서 작가의 행위는 주제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물성이란 부수적 조건일 뿐 본질은 그 화면에 있다. 그의 작품에는 강한 묵선으로 탁본(拓本)된 식물줄기들이 뭉쳐지고, 흩어지며, 엇갈리고, 겹쳐진다. 선들은 겹쳐지되 틈이 없이 밀집하기도 하며, 성글게 모여있기도 하고, 동떨어져 있기도 하다. 어떤 선은 농도가 옅어서 미약한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탁본 자체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묵선이 찍힌 면을 뒤집어서 붙인 결과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 모든 선들은 전체적인 화면의 구성과 색조(tone)를 위해 화가의 의도대로 배치되었다. 우연히 떠낸 묵선을 임의적·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단위들을 찢고 붙여서 목적에 맞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남영희, 지의 물성과 색감이 매개하는 회화적 자의식 

글 고충환 미술평론

1960년대는 동인의 시대다.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이 모인 동인활동이 개인전보다 활발했고 주목받던 시기다. 그중 논꼴동인이 있다. 1965년 창립 당시 남영희는 유일한 여성작가로서 동인에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작가의 참여는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이 추상미술을 하는 여성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한다는 소명의식 없이 생각하기 어렵다. 그만큼 추상미술이 시대적 당위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논꼴동인 역시 추상미술을 주도했는데, 특히 자생성 내지 주체성을 고민했던 것 같다. 추상성과 주체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형식논리는 무엇일 수 있는지 고심한 것. 여기서 추상미술은 우선은 서양화의 형식논리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 패러다임의 소산이지만, 이보다는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싶고, 작가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회화의 기본적인 형식 요소에서 시작해보는 것이다. 남영희 작가의 경우에 이런 형식 요소를 특히 면에서 찾았던 것 같다.

추상성(추상미술의 형식논리)은 그렇다 치고, 주체성은 무엇인가. 주체성은 일종의 원형 의식이다. 원형은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나의 일부로서 취해져 있었던 무엇이다. 즉, 전통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지에서 이런 전통의 원형을 보고 원형질을 본다. 한지에 전통이 온통 녹아 들어있고 배어 들어있다고 본 것이다. 전통이 체화된 형식 곧 전통의 질료라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질료는 물론이거니와 형태마저 면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크고 작은 면들이 어우러져 창호 문을 만들고 종이 연을 만들고 생활용품을 만든다. 결국 남영희 작가의 경우 추상성(면으로 나타난)도 주체성(정서적 질료로 나타난)도 하나같이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며, 작가의 유년시절의 기억(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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