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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KOREAN ART ④

이쾌대의 〈군상〉에 나타난 후지타 쓰구하루의 흔적

글 황정수

이쾌대(좌)와 후지타 쓰구하루(우)

1. 이쾌대의 삶과 한국미술사에서의 위치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이쾌대라는 화가만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한 작가도 드물다. 파란만장한 삶도 그렇거니와, 그가 구축한 자신만의 특별한 미술세계와 조국의 현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인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신화 그 자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어려움이란 전혀 모르고 살았던 어린 시절과 패기로 가득 찬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며, 일본으로 유학하여 선진적 식견을 가진 일본 화가들을 만나 세계미술을 접하고 자신의 미술 시각을 넓히며 평생 미술가로 살아갈 결심을 굳게 다지는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와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자신이 추구한 미술의 종착역인 〈군상〉 연작을 완성하던 시절은 화가로서의 절정기였다.
 

이후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의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맞이한 그는 스스로 북쪽을 선택하고 가족과 이별한다. 이쾌대의 삶은 당시에는 미술사의 비극으로 느껴졌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오히려 신화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경북 칠곡의 대지주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어린 시절을 그 지역의 중심인 대구에서 보냈다. 그는 수창보통학교를 졸업하는데, 같은 기수에는 훗날 유명한 서양화가로 성장하는 이인성이 있었다. 이인성은 보통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빼어난 실력을 보여 지역의 보배로운 존재로 유명해지는데, 이쾌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술에는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이인성과는 별다른 친분의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가난한 이인성과 부유한 이쾌대가 생활하는 방식과 반경이 달라 서로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쾌대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한다. 그는 휘문고보에서 뛰어난 학업 성적을 성취하고 예체능에도 재능을 보인다. 특히 야구 선수로서 자부심이 강하였다. 당시 교지에 이웃의 중앙학교에 야구시합에 진 것을 자책하며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을 다짐하는 글을 써 전교 학생들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미술선생님인 서양화가 장발의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특이한 것은 고보 재학 중 신여성 유갑봉을 만나 일찍 결혼한 것이다. 유갑봉과의 결혼은 당시 부유했던 집안의 아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후 유갑봉은 이쾌대와 함께 도쿄로 유학을 떠나 삶의 동반자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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