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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야 하는

글 백지홍

4월의 첫째 주 주말,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오가는 내용들은 흥미롭고 때때로 유익하여 그 대화를 듣기 위해 투자한시간, 열정, 비용이 아까울 것은 없었지만, 서로 아주 가까이에서 맴돌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하는 느낌은 오묘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번호 ‘Special Archive’에서 다룬 국립현대미술관의 심포지엄 ‘미술관은 무엇을 연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세계 주요기관의 전문가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모색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관장 선정 시부터 국제적 인맥이 기대되었던 마리 관장이 정말로 인맥을 적절히 활용한 것인지 대형서점 미술 코너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귀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만족스럽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면 이 쟁쟁한 패널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리고 한국인 방청객들이 요구하는 질문과 다른 질문을 품고 활동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고간 다양한 이야기는 ‘공공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유럽과 미국 미술관의 경험과 문제의식은 한국의 미술관과 많이 달랐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들에게 미술관은 너무나 단단한 ‘전문성’때문에, 기준에서 소외된 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었고, 발표자들은 생산적 논의를 막는 미술관의 권위를 어떻게 깨뜨리고 진정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에 필요한 것은 권위 있는 전문성을 다지는 것 아닐까요. 상호 간 의사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점을 세워야 모든 공공성의 기반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심포지엄에 참여한 한국인 패널들은 기초적 아카이브의 부재나, 전문가들이 소외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 제기는 ‘문화 선진국’에서 온 패널들에게 닿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선형적 미술사를 내세우고 문화계의 절대적인 권위를 세우는 것이 오늘날 공립미술관의 역할은 아닙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한국의 미술관들도 공공 개념을 확대하는 동시대 미술관들의 흐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적절히 수용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단지, 다른 미술관은 이미 완수한 미술사 정립이라는 역할까지 함께해야 하는 이중 임무를 띠게 된 것이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은 미래와 과거 양쪽을 바라보며 움직여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우리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한 아시아 미술관들의 경험과 노력을 듣는 자리도 마련되면 더욱 의미 있는 기획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달려온 우리에게는 미처 해결하지 않고 놓고 온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달려가는 만큼이나, 지금까지의 일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쌓아가는 조금은 지루하고 힘든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특집기사 ‘애도의 미술’에서 다루는 4·3과 세월호 문제 등 수많은 역사적 비극들도 그러하지요. 모두가 앞을 향해 달려간다 하더라도,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국공립기관들에게는 뒤를 돌아보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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