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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선 소나무, 야송 이원좌

글 백지홍

야송 이원좌 작가 ©김흥규

‘야송(野松)’. 들 야, 소나무 송. 들에 홀로 선 소나무. 흔히 ‘소나무’하면 떠오르는 것은 산속에 군락을 이룬 모습일 것이다. 평지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손길에 의해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홀로 우뚝 서는데 성공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경외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야송은 수묵화에 매진해온 이원좌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세상의 풍파에 홀로 맞서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온 그에게 야송만한 호가 있을까. 2018년 7월, 팔순전을 준비 중인 야송 이원좌 화백의 70년에 달하는 작품세계를 만나보자.

기인 화가
화업(畵業) 70년,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그에게 던져지는 또 다른 애칭이 있다. 기인(奇人).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야송 이원좌의 작품세계와 삶」을 작성한 김종옥 수필가는 이원좌의 그림이 말 그대로 그가 미쳤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경지였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창작활동을 이어왔기에 홀로선 소나무, 기인, 광인이라는 말이 작가의 뒤를 따른 것일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 비하면 창작을 위해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은 대부분 보통을 넘어선 것으로 느껴질 것이니, 예술가들 사이에서 기인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행보를 보여야 한다. 어디 평생을 산수화에 매진해온 예술가가 이원좌뿐이랴. 그가 기인이란 호칭을 얻게 된 것은 일반적인 예술가 이상의 집착을 창작 과정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산수 속으로 들어가 직접 목격한 산수를 며칠이고 그린 그가 그러한 답사나 작품을 끝내고 병원 신세를 지기는 다반사. 한 작품을 끝내고 12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니 작업강도를 짐작케 한다. 그에게 그림은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야송의 상상을 뛰어넘는 열정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대작(大作)들이다. 그는 회화 작가이니, 여기서 말하는 큰 작품은 물론 대형 회화다.

고정관념은 피해야겠지만, 이원좌 작가의 생애를 보면 일반인과 다른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학창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대구 오성중학교 재학시절 미술 과목 최고 점수를 받았고, 미술부 반장을 맡은 후에는 2년간 수채화 1,700점을 그릴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 대학시절에는 1학년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얌전한 모범생이라기보다는 이왕 대학에 진학한 만큼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종에 가까웠다. 이러한 독종 정신은 야송의 기본 창작 방식이며, 문외한이 보기에 ‘기행’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의 원천이 된다. 이는 1974년 개최된 첫 개인전에서도 드러난다. 화단에 첫발을 디딘 청년은전지 24매 크기의 〈새알산하휴도〉를 선보이며 대작 작가로서 이목을 끌었다. 제1회 중앙미술대전 특선, 국전 입선으로 이어진 그의 화업은 1979년 제3회 개인전을 통해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다.

 

*나머지 내용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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