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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그린 그림

글 정희민

정희민, 〈Fruits3〉, 종이에 유채와 아크릴, 80×125cm, 2018

가끔 애초부터 자(Ruler)를 쓰지 않았으면 인생이 조금은 편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림이, 내가 그림 안에서 원하는 것이, 도리어 나를 억압한다. 나와 그림은 어떤 지침들을 교환하며 서로를 다져나간다. 외부로부터 각자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가 되어간다. 본 것을 어떻게 보지 않은 셈 칠 것이며 느낀 것을 어떻게 느끼지 않은 것처럼 씻어낼 수 있을까? 몸에 닿는 모든 감각들이 입력되고 그것은 하나의 ‘값’이 된다.

기억의 공간에는 빛이 있으나 공기가 없다. 나는 매일 밤 그 고요한 무덤에 까치발을 하고 들어선다. 내가 어느 시점을 지나고부터 순차적으로 폐기한 수사들을 만난다. 그것들은 눈을 통해 확증되지 않은 이미지들과 뒤섞여 계열 없이 존재한다. 수사의 위성들은 관습 그대로의 궤도를 유지한다. 지도를 그릴 백지를 새로 꺼낸다. 그것들은 숨지도, 무엇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공간 안을 재단하는 ‘자’는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지도는 착시의 숙명을 예비하며 금방이라도 구겨질 준비를 한다.

지하철을 타면 나는 눈동자를 본다. 운동하는 눈동자를 본다. 눈동자들은 상하로, 좌우로 때때로 사방팔방으로 격렬히 움직인다. 보는 동시에 잊기 위한 운동을 한다. 우리는 눈으로 본 모든 프레임을 저장하므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만, 대개는 그 기억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한다. 우리는 기억의 압도적 양으로, 육체보다 큰 부피로 우리 자신의 총체상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모두 닮아간다.

레몬색의 고운 입자가 표면에 달라붙으며 빛의 가장자리를 장식한다. 빛, 고유색이 지시하는 덩어리, 덩어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단순하게 압축된 외곽으로 단단해진다. 나는 빛과 외곽으로 양감을 통제한다. 강한 빛은 양감을 강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안료가 넘치면 요철이 생기고 미디엄이 넘치면 얼룩이 진다. 빛의 값과 그것을 배치하는 안료 사이의 균형이 만들어내는 비전은 전혀 다른 성질의 덩어리를 만나면서 깨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을 빚는 이의 욕망도 일었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두 덩어리의 대비는 이 모든 것들이 안료라는 동일한 조건 위에서 성립한다.

2016년 4월의 노트
‘뜯어볼 곳이 없는 그림. 발길을 붙잡지 않는 그림, 붓질이 없는 그림, 감정이 없는 그림, 표현이 없는 그림, 해석이 없는 그림, 그림일 이유가 없는 그림.’ … 내가 ‘방금 내린 눈처럼 하얀 식탁보’, ‘왕관처럼 수북이 얹힌 빵’을 어떤 뉘앙스로 그려도 당신은 알아챌 수 없다. 공포를 향해, 나는 기계가 되어가므로.

 

정희민(b.1987) 작가는 《UTC-7:00 JUN 오 후 세 시의 테이블》(2018, 금호미술관), 《어제의 파랑》(2016,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등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Sticky Forever》(2017, 킵인터치), 《스노우 스크린》(2017, 아카이브 봄)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17년 서울특별시 문화 예술과의 서울 청년예술단에, 2016년 서울문화재단의 비기너스(Beginners) 프로젝트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되었다. heeminch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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