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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T

그랜트 우드의 꿈, 미국인의 미술 〈아메리칸 고딕〉과 다른 우화들

글 이정실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 구성 나무판, 78×65.3cm. Art Institute of Chicago; Friends of American Art Collection, 1930, ©Figge Art Museum, successors to the Estate of Nan Wood Graham/Licensed by VAGA, New York, NY. Photograph courtesy Art Institute of Chicago/Art Resource, NY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과 다른 우화들(Grant Wood: American Gothic and Other Fables)》
3.2~6.10 |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언제 봐도 속이 탁 트이는 아름다운 건물인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미국 작가 그랜트 우드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줄 서 있었다. 줄을 같이 섰던 두 미국 노부인에게 이 작가가 정말로 어떤 이유로 미국인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작가인지 확인하려 하니, 그들은 아주 진지하면서도 애정어린 표정으로 “이 작가는 진짜 미국인이니까”를 반복적으로 말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다시 “중서부의 진짜 미국인”이란 말만 되뇌었다. ‘미국인들은 이 작가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되고 ‘미국적’인 것을 느끼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미 중서부에 주로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을 미 동부에 사는 필자가 실제로 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특히 20세기 미국 미술사 시간마다 어김없이 강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주요작인 그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1930)을 직접 볼 생각에 내심 가슴이 뛰었다.

장식과 공예품을 통해 대중에게로
전시는 우드의 전 생애(1891~1942)를 어우르는 것이었고, 첫 번째 전시실은 그의 초기 공예품 샹들리에나 디자인 작품, 건축물의 일부 장식품부터 시작된다. 그는 1891년 아이오와 아나모사(Anamosa, Iowa)라는 작은 농장 마을에서 태어났다. 10살에 아버지(Maryville Wood)를 여의고 시더 래피즈(Cedar Rapids)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어린 나이에 장식 미술, 즉 공예가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트 인스트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장식미술을 전시하는 등 공예에 열정을 가졌지만 작품이 잘 팔리지 않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화가가 되었다. 스스로는 화가라고 여겼지만 수입을 위해서 계속해서 건물이나 가구, 그릇,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제작하였고, 이 시기의 경험과 작품 활동은 이후 작가의 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회화에서도 ‘장식적인 패턴’을 선호하는 것과 더불어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을 지속적으로 지향하게 한 것이다. 이때는 마침 할리우드 영화와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대중’의 의미를 새롭게 확대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건물 내부를 장식하거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그리고 실용품이나 촛대 등을 디자인하면서 예술과 삶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던 ‘예술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의 영향 하에, 회화도 엘리트들만을 위한 복잡하거나 추상 미술이 아니라 대중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미술을 만들고자 한 것이 그의 가장 기본적인
예술관이었다. 스스로의 예술관을 확립하기 전에는 우드 역시 그 시대의 다른 미국 작가들처럼 유럽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나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그리기도 했었다. 그가 1920년에서 1926년간 여러 번에 걸쳐 유럽으로 여행하며 지낸 시간은 도합 23개월 밖에 되지 않지만, 그는 유럽의 화풍과 건축 양식 특히 고딕 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내면화하고자 하였다. “장식 먼저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자”라고 작가가 기술할 만큼 우드는 패턴이나 디자인 등의 유기적 구성을 중시했다. 이 전시장에는 그의 이러한 여정이 잘 전시되어 있지만, 시대적이라기보다는 주제별 구분에 더욱 치중하여 기획된 전시였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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