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MODERN KOREAN ART ⑤

화가 이인성과 평생 친구 채현년의 우정

글 황정수

1930년의 채현년(좌)과 이인성(우)

1. 이인성과 그의 막역한 친구, 채현년
일제강점기인 1928년, 대구에 있는 수창공립보통학교(현 수창초등학교)에서 훗날 한국 근대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위대한 두 명의 인물이 졸업한다. 한 명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관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찬란하게 장식한 천재적인 화가 이인성이고, 또 한 명은 도쿄제국미술학교를 나와 한국 근대 사실주의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쾌대이다. 두 사람이 살아온 환경은 극단적으로 달랐으나, 조국을 잃은 어려운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다 결국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특별한 삶을 살아간 특별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관계로 화가 이인성의 보통학교 시절을 언급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이쾌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보통학교 동기동창이었을 뿐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어 특별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이인성과 달리 이쾌대는 일제 강점 시기의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어려운 환경에서 살던 다른 친구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더욱이 이쾌대가 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의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면서 서로 동창 이상의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두 사람은 단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나왔을 뿐이다.

이인성과 어린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으며, 서로를 가장 잘 이해했던 친구는 ‘채현년’이다. 두 사람은 근처에 살아 자주 만났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채현년과 이인성은 1912년생으로 동갑내기이고, 이쾌대는 1913년생이니 이들보다 한 살 아래이다. 채현년과 이인성은 1922년 보통학교에 입학하는데, 그때 나이가 11살이었다. 당시의 교육 환경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늦은 나이인 것은 분명하다. 채현년은 가난한 이인성에 비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보통학교 시절 성적이 우수하였으며, 학교생활도 매우 성실했던 모범생이었다.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과목에도 재주가 있었으나, 그보다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학생들 사이에 지도적인 입장에 있었다. 보통학교 전 학년을 거쳐 줄곧 급장 또는 부급장을 지냈으며 항상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그 결과 5학년 때는 전교 3등을 하였고, 1928년 3월 25일 6학년을 졸업할 당시에는 전교 1등상을 수상한다.

수창보통학교를 졸업한 채현년은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1928년 대구 지역 최고 명문 학교인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이인성의 부러움을 산다. 당시 이인성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정상적인 고보 진학을 하지 못하고 그림 재주를 바탕으로 화가 서동진이 운영하던 광고 출판업체인 대구미술사에 취업을 한다. 같은 보통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집안 형편에 따라 서로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당시 이인성의 그림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채현년은 짧은 학생 머리를 하고 고보 교복을 입고 있으나 이인성은 긴 머리에 허름한 작업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심한 대조를 이룬다. 두 사람의 처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채현년은 3년 후인 1931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집안이 여유로웠던 채현년은 더 높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보 졸업과 함께 일본 교토로 유학을 떠나 명문 학교인 교토 중학교에 편입한다. 당시 일본의 명문 대학에서는 식민지인 한국의 고보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일본의 중학교에 입학해야만 했다. 채현년도 대구고보의 3년 과정을 이수하였지만 일본의 대학 입학 규정에는 모자라 교토에서 다시 중학교 과정을 이수해야만 했다. 그는 2년 후인 1933년 교토중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상업학교인 도시샤(同志社)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36년 졸업한다. 현재의 교육과정으로 따지자면 도시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셈이다. 당시 도시샤 졸업장에 채현년의 신분을 ‘조선사족(朝鮮士族)’이라 한 것을 보면 채현년의 집안은 당시 대구 지역의 지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