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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잠자는 예수, 스마일, 오렌지의 관극술

글 추성아

우정수, 〈페턴즈 13〉, 종이 위에 펜, 14.8×21cm, 2018, 온그라운드2 설치 ©우정수

우정수: Calm the Storm/ 2.23~4.1/ 금호미술관+우정수: 페턴즈(Patterns)/ 3.2~3.20/ 온그라운드2

우정수는 다른 규모의 구조와 조도를 보여주는 두개의 공간에서 확연히 다른 호흡의 전시 《Calm the Storm》과 《페턴즈》를 선보였다. 다른 결의 회화와 드로잉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두 전시는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우정수일까?’라는 호기심을 유발하게 했는데 그에 앞서, 온그라운드2의 흰 가벽 모서리 하단에 그려진 〈북큐브〉 중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유독 작가가 넌지시 던지는 힌트처럼 보였다. 다작의 드로잉과 페인팅을 지속해온 그는 많은 부분 책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왔지만 이번 전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담고 있는 서사적인 여러 관계를 해체하고 단어를 자유롭게 풀어주듯이 이미지와 회화의 형식을 화면 안에서 극적으로 담아낸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결합으로 소설적인 극을 의미하는 서사극(Epic Theatre)과 유사하게 우정수의 페인팅과 드로잉은 기존의 잘짜인 극보다 조각난 에피소드들을 엮은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전시 《Calm the Storm》이 우리가 지금껏 접한 도상의 이미지들을 거대한 캔버스 화면 안에서 회화의 형식에 힘입어 서사극 형태의 “관극술”로 보여주었다면, 《페턴즈》는 작가가 공간이 보유하고 있는 부분들을 활용하여 더 명민하고 익살스럽게 거리두기를 한다.

〈Calm the Storm〉 시리즈는, 신약성서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폭풍을 잠재우는 예수와 요한복음 구절 중 예수의 제자 도마가 그의 부활을 의심하는 카라바지오의 풍속화, 네덜란드 정물화에 쓰인 바니타스(vanitas) 등 죽음과 위기, 의심, 공포 등이 흑백의 모노크롬 화면과 교차한다. 명화에 쓰인 도상들이 해체되어 이어지는 다음 화면에 과감하게 지나가는 드라마틱한 붓질은 도상으로 읽히는 것을 방해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반면에 회화사에 등장하는 모더니즘 회화의 형식들을 하나의 도상이자 기호 그 자체로 동시에 바라보도록 한다. 카라바지오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마저 상실되어 긴 화면의 중앙에 두꺼운 검정 외곽선으로 납작해진 이미지는 그것을 나타내는 강조된 형상에 집중하며 선택적 보기에 대해 질문해 보게 된다.

우정수가 만들어 놓은 연극적인 장치들은 단순해 보이는 화면의 분할과 더불어 《페턴즈》에서는 일정한 공간 구획 속에 삽입시키는 데 주목한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문 위에 붙여진 오렌지색과 유자색 시트지의 〈선셋카니발〉은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지옥편에 나오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듯이 해골의 외곽선이 바닥에 빛과 대조되어 뚜렷한 그림자의 형상으로 공간을 다채롭게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한 단계 나아가 참조해온 서사의 티끌 같은 개별 패턴들을 떼어와 이미지가 갖는 모양새 자체를 한데 모아 연출한다는 점이다. 오렌지색의 시트지와 동일한 색의 액자와 여백 테두리는 이 ‘연극(전시)이 연극임’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처럼 이미지의 서사와 도상을 철저히 분리하는 관극술을 보여준다. 나아가, 〈페턴즈〉 드로잉 시리즈에 등장하는 히스테리컬하면서 섬뜩한 스마일 가면의 댄서들은 거리낌 없는 디스토피아의 비극적인 익살극의 단편들의 모음으로 우리가 보는 방식에 있어서 받아들여지는 부분을 끊임없이 방해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술수로 작용한다.

도상과 기호, 서사에 관한 미학적 원칙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서양의 회화사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이 두 전시에서 우정수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식은 고딕체 알파벳에 등장한 사람과 동물의 형상,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도상들이 뒤섞여 있는 이미지들에 가까울 것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에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는 앨리스에게 “내 이름은 내 모양새를 말해”라고 말한다. 담벼락에서 떨어져 깨진 이 거대한 달걀은 단어의 의미를 제멋대로 바꿔서 사용한 익살스러운 인물이다. 험프티 덤프티가 나타내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갖는 도상은 오랜 시간 재생산되면서 도상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보다 글자의 모양이나 이름을 발음하는 모양새 등과 같이 사물의 형태에서 잃어버린 ‘형상화’를 찾으려는 관심에 집중한다. 이는 〈Calm the Storm〉에서 폭풍을 잠재운 예수를 후광이 사라진 잠자는 예수로 그려 화면의 다른 곳에 옮겨 놓은 작가의 의도와 같이, 이미지를 전혀 다른 독법 혹은 화법을 발견하게 되는 역할로 작용하게 한다. 나아가, 우리가 보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이해 범위 안에 선택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그 도상 자체의 기능이 역으로 무의미해져 버리고 상실됨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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