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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구멍을 배회하다

글 김연수

김아영,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단채널 HD 비디오, 약 20분, 2017 이미지 제공: 일민미술관

IMA Picks 김아영: 다공성 계곡/ 2.23~4.29/ 일민미술관

김아영의 영상 작업 〈다공성 계곡〉은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와 이주 데이터 센터(IDC)의 문지기(gate keeper)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페트라의 모암(matrix) 즉, 모체에 사고가 생겨 더 이상 그가 거주할 곳이 없어졌고 그래서 새로운 거주지로의 이주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

페트라 제네트릭스
영상에서 눈에 띄는 키워드를 세 가지 정도로 꼽아보자면 주인공 페트라, 인터뷰가 진행되는 공간,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거주지다. 광물 입자의 모습을 한 페트라의 신원에 대해 문지기는 사고로 인해 페트라의 원래 형상은 사라졌다는 사실과 인간의 욕구가 고안해 낸 심리적 장치로서 인간 마음에 누적된 생각 찌꺼기를 처리해 온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생각이란 것이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뭔가라는 것을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대사와
더불어 페트라는 그의 종족이 다른 존재들, 즉 인간들의 정신과 마음, 이상주의의 소산임을 밝힌다. 한데 뭉친 입방체들의 모임은 기계음을 목소리로 가지고 있다. 특정한 공간 영역이 보이는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가진 움직임, 그리고 감정이 섞인 기계음은 그가 컴퓨터 데이터 덩어리이자 인간의 역사를 이뤄온 생각의 일부가 물질, 그것도 살아있는 물질로서 표현됐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영상 작품 속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트라의 모습은 3D 그래픽으로 그려졌다. 인간의 생각들이 만들어낸 디지털 기호들로 탄생한 생명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간 생각의 산물이라 이야기하고 있으며 게다가 생각의 찌꺼기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은 영상 속 뿐만이 아니라 현실세계에도 온전히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페트라의 정체성은 단순히 인간이 생산해 낸 데이터의 집적을 넘어 잉여적 생각, 필요에 의한 가치 상정 등에서 방황하는 예술의 정체성, 더 나아가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 되지 않은 모든 것들(사회적 보호 장치가 없어진 인간, 쓰다가 버려진 물건 등)의 나약하고 황망한 모습 등을 연상케 한다.

다공성 계곡
페트라의 예전 거주지이자 모체인 ‘다공성 계곡’은 페트라 같은 광물들이 지층을 이뤄 모여 있는 곳이다. 작업을 통해 역사와 지질학을 연결 짓는 김아영의 시도는 2014년 작품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시리즈로부터 이어진다. 그는 석유 자본의 이동과 우리나라 근대사를 연결하는 작업의 과정에서 지하에서 석유 시추를 할 때 비워진 석유의 자리를 물로 대신 채운다는 사실을 알았다. 광물자원을 추출해 지하 지층에 구멍이 생기는 지질학의 다공성 개념은 이번 작업 〈다공성 계곡〉의 주요 모티브이자 작업의 구조를 이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불연속성, 개연성 없음을 구현하기 위해 채택한 개념인 ‘플롯 홀(plot hole)’은 그 빈자리가 무엇인지 추측하는 관객 혹은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크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플롯 홀은 페트라의 모체에 일어난 사고일 것이다. 앞선 작가의 작업과 연관해 추측해보자면, 무분별한 광물 추출로 인해 얼기설기해진 지하 지층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든지, 세계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싱크 홀, 더 나아가 문화-역사와 연결해 생각했을 때, 이념을 이유로 IS, 탈레반 등의 무장단체가 파괴한 문화재의 모습 등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작가가 그려낸 ‘인식의 지층’은 예쁘고 화려한 색을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단면을 가진 판들로 쌓여있다. 마치 현대의 얇고 화려한 광고판을 연상하게 하는 그 사이를 화면은 배회한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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