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REVIEW

용어의 휘발, 춤의 발화

글 양은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중 〈바이올린 페이즈〉 ©박수환,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18’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Fase: Four Movement to the Music of Steve Reich)〉(1982) 중 〈바이올린 페이즈(Violin Phase)〉가 초청되어 4월 2, 3일 서울박스에서 여섯 차례 진행되었다. 필자는 국내의 다원예술이라는 불확실한 의미와 더불어 1982년에 발표한 드 케이르스마커의 본 작품이 다원예술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동시대예술, 현대예술 그리고 미술관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용어와 개념으로 퍼포먼스를 수식하는 용어의 포화 속에서 다원예술과 드 케이르스마커의 〈바이올린 페이즈〉를 다시 돌아본다.

다섯 걸음. 그가 무대로 들어간 거리이다.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바이올린 페이즈(Violin Phase)’연주가 미술관 로비로부터 전 공간으로 울려 퍼진다. 파장을 일으키는 소리와 함께 드 케이르스마커가 음악을 조율하듯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하얀 모래 바닥 위를 나아간다. 그가 그리는 큰 보폭에 흰색 플레어원피스 자락은 바닥과 신체를 휘감으며 흰 바람을 일으킨다. 가로세로 약 10m의 정사각형 무대에서 다섯 걸음 들어간 곳으로부터 드 케이르스마커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공간의 정면은 사라지고 그녀는 자신을 기준으로 신체의 좌우, 사선으로 시작한 공간을 180도 좌우로 교차시키며 한 자리에서 45도씩 시선의 기준점을 이동시킨다. 같은 방식으로 360도를 이동하는데 45도씩 분절된 점들은 각각 그의 정면이 된다. 반복된 동작으로 발이 스쳐 지나간 라인으로 드러난 검은 바닥의 곡선들은 반복동작이라는 점에서 2차원에 머물지 않고 3차원의 거대한 조형물을 만드는 듯 착시를 일으킨다. 드 케이르스마커가 사용하는 동작은 ‘호흡의 풀고 잠금’, ‘뛰기’, ‘돌기’, ‘치마치기’, ‘다리차기(kick)’ 등의 반복으로 단순하다. 이러한 동작과 공간사용 그리고 음악은 계속해서 원점을 이룬다. 바닥에는 커다란 하나의 원이 그려지되 다리 동작은 직선을, 두 팔을 벌려 상체는 직선을 이루되 몸은 턴(turn)동작으로 이뤄진다. 서로 대비되는 방향과 동선이 원점으로의 회귀와 원점으로 부터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원점을 강화시킨다. 종결과 시작이 끊임없이 몸에서 이뤄지되 전진한다.

〈바이올린 페이즈〉는 네 대의 바이올린 연주로 이뤄진다. 음악의 한 마디가 기준이 되어 각각의 바이올린의 연주 시작점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리 이뤄져 연주는 반복되며 점진적으로 어긋나 변형되었다가 병렬되는 구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오디오를 사용하였으나 네 대의 바이올린이 시간차를 두고 연주의 레이어를 이루는 서라운드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한 마디의 반복은 멜로디를 이루지 못하며 시간차로 인한 변형과 병렬 사이에서 공명만이 음악의 길을 만들어낸다. 이 음악의 길은 드 케이르스마커의 발이 스쳐지나간 모래바닥 위에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바닥에 한 번의 패턴이 그려지면 움직임은 그 위에서 반복, 왕복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춤이 시작된다. 네 대의 바이올린 연주는 바닥의 드로잉과 함께 공명 사이로 미끄러지며 바닥의 선을 잊는다. 대부분의 드 케이르스마커의 작품들은 평면의 패턴을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정해진 구조와 규율 속에서 무한의 춤을 이뤄낸다. 드로잉과 바닥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춤’의 발화이다.

미술관의 중정과도 같은 서울박스에서의 공연은 정해진 시간(16분)에 가로세로 약 10m로 바닥에 깔린 흰 모래로 미술관에서의 공연이지만 10㎥큐브에서의 공연처럼 안정성을 갖는다. 2차원의 바닥 위에 선 드 케이르스마커는 움직임의 기준을 사각 무대를 팔분할하여 사용, 무대와 큰 원의 중심은 동일해 그녀의 동선이 무대이자 무대 자체가 그녀의 동선이 되는 공연을 위한 공간이 된다. 동시에 미술관의 자연광과 위아래 층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관람을 허용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드 케이르스마커가 동작과 몸 방향의 기준이 되는 점을 사각 무대의 대각선인 몸의 외부에 기준점을 세우고 시작했다면 작품의 끝은 사각무대와 드 케이르스마커가 그린 원의 동일 중심점은 두 손을 올려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인 드 케이르스 마커의 몸이 된다. 그가 측정했던 외부의 점, 선과 그로 인해 매핑 되었던 3차원의 공간은 그녀의 몸으로 방점을 찍는다. 모든 움직임의 기준점과 공간의 측정 기준을 자신의 몸으로 품고 퇴장한 자리는 오히려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바이올린 페이즈〉는 그의 몸이 지나간 흔적들이 네 대의 바이올린의 공음과 함께 흰 모래를 가르고 드러낸 바닥의 선들로 채워질 때 몸은 소
리가 되고 춤은 오랜 시간이 된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