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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오랜 촬영

글 김솔지

구보타 히로지, 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
3.10~4.22
학고재갤러리 전관

 

 


구보타 히로지, 〈불교성지, 황금바위, 짜익티요, 미얀마〉, 1978 이미지 제공: 학고재갤러리구보타 히로지(KUBOTA Hiroji, b.1939)는 매그넘(Magnum,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 최초의 아시아인 사진가다. 1961년, 도쿄의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일본을 방문한 매그넘 사진가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을 배웠다. 1965년에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첫 활동을 시작하고, 1966년에 미국에 있는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묘소를 촬영하게 된다. 어느 숲속, 잭슨 폴락의 서명이 있는 바위를 클로즈업한 흑백사진이 런던 『선데이 타임즈(Sunday Times)』에 실렸다. 이후 그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지역을 반복적으로 촬영해 왔다. 1966년에 남한을, 1978년에 북한을 처음 방문하기 시작해 여러 차례 촬영했으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 이후 중국의 45개 지역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진-기록을 진행했다. 구보타 히로지는 유일무이한 일본인 매그넘 사진가로서 50여 년에 걸쳐 눈앞에 펼쳐진 사회와 자연의 현상을 강박적인 태도로 남겨왔다. 그의 많은 사진 중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 109점이 추려져 학고재갤러리와 ㈜유로 포토/매그넘한국에이전트 공동 주최·주관으로 전시되었다.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구보타의 오랜 촬영은 현상을 마주한 순간, 즉각적 반응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다. 그의 사진은 보도 사진이라는 제1의 목적에 따라 대상, 구도, 색감 등 모든 면에서 침범할 수 없는 명확성을 띤다. 그는 늘 ‘역사적 관찰자’로서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렇게 만든 사진이 다시금 그에게 축적되면서 그는 사진가로서 몇 번의 결단을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8년에 촬영한 〈불교성지 황금바위, 짜익티요, 미얀마〉이다. 그는 흑백을 고집하다가 황금 바위의 색에 매료되어 컬러 사진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이 사진을 다이-트랜스퍼(dye-transfer) 프린팅이라는 독특한 인화법으로 제작하게 된다. 다이-트랜스퍼는 젤라틴 판에 용액을 발라 놓고 염료를 흡수해 이미지가 나타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필름회사 코닥(Kodak)에서 이 기술을 대중화시켰다. 최근에는 비용이 비싸고 여러 기술이 요구돼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방식이다. 다이-트랜스퍼 프린팅은 사진의 미묘함과 뉘앙스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며, 제작 과정에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등 사진가의 조작과 관리가 매우 용이하다. 구보타 히로지는 색이 과하게 밝거나 미묘한 차이들이 구분되지 않는 기존 컬러 프린팅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독일의 장인을 찾아가 다이-트랜스퍼 인화를 직접 배웠다. 평생에 걸쳐 강박적으로 찍어낸 그의 사진을 거의 완벽한 통제 하에 생산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이-트랜스퍼로 제작된 대형 사진이 여럿 전시되어 그 미묘함을 즐길 수 있다.
본능적으로 늘 소지하는 카메라를 눌러댄 그는 무수한 사진을 남겼고, 이는 보도의 시기도 지난 지금, 사진 기록으로서 남아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늘 연동되고 종종 포개져 있기 마련이다. 그의 사진은 예술작품으로 감상되고 판매될 수 있는 동시에 과거의 역사적 이미지 기록으로서 무궁한 가치를 담고 있다. 이번 구보타 히로지의 회고전이 그의 사진을 ‘연구’의 지평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 즉 그의 사진들은 개인 사진가의 예술작품이기도 한 동시에 일시적으로 현재했던 현상에 대한 가장 빠른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 필요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용될 필요가 있다. 특히 60년대부터 70, 80년대에 걸쳐 아시아 여러 국가의 지역을 오가며 만든 그의 수많은 사진은 아시아 근현대기의 특정 주제를 연구할 때, 연구의 밑바탕이나 증거로서 다각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50여 년간 지속된 구보타 히로지의 강박적 촬영과 전문적인 프린팅으로 만들어낸 사진이 또 다른 기록을 위하여 여러 주제에서 연구의 사료 또는 자료로서 다양하게 읽혀나갈 때, 이제는 보도를 마친 ‘기록 사진’으로서 의미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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