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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림과 그리기

글 이주희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23~3.25
대안공간 루프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11)〉, 캔버스에 수채, 112×145.5cm, 2017 이미지 제공: 대안공간 루프그림이 많았다. 80호 크기의 캔버스를 15개 이어붙였다는 화면엔 원뿔이든 솔방울이든, 나무든 풀이든 그렇게 보이는 그림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고 비슷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모든 것과 아무 것도”이고 “안과 밖”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가깝고(도) 먼”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호하지만 이것저것이라는 말 같은데, 사물이 있고 장소도 있고 인간도 있다.
보이는 것 이외에 눈에 띄는 것이라면 미술의 영역에서 ‘레이어(layer)’라고 불리는 것이다. 작가는 수년 전부터 다수의 소실점을 하나의 화면에 연결지어왔고, 색채와 함께 보이는 것이 유럽의 특정 화파와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 왔다. 여기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레이어를 사용하면서 ‘화면 내의 화면’, 무언가의 ‘제시 바깥의 제시’라는 형식을 이어오고 있다. 회화라는 시각적 제시를 고려하며 그러한 수단으로 레이어를 다룬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중 어떤 의미는 하나의 시공간에 창을 내어 다른 시공간을 들여오고자 함일 것이다. 한 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하나의 세계가 아닌 복합이자 다수의 세계를 현실에 제시하는 것이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 모두를 넘나들겠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름 없는 산》(2017)전에서 수직과 수평 세계, 앞과 뒤의 이야기들을 전방위로 드러내는 화면을 선보였다. 사각의 캔버스 안에 또 다른 둥근 세계가 있었고 그 안에 산이며 뿔이며 열매이며 하는 것들을 그렸다.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 놓고선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열어 놓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화면 안에서 다루어지던 그림 각각은 다음의 전시에도 고스란히 등장하게 되고, 그러던 화면이 《모든 것과 아무것도》(2017)전에서는 병렬적으로 펼쳐지다 이번 전시에 이르러서는 양적인 팽창을 보이고 있다. 지속적으로 레이어를 사용해 가며 화면을 분할해 오고 있지만 그 수순이 점점 ‘평평’하게 나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림 각각은 도상으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의미의 파생과 해석의 여지를 갖기 보다는 보이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일 수도 있는 그림으로서, 작가 스스로에게도 어떤 의미소인 것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만을 가진 그림으로서 도상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도상이라는 것이 어떻든 간에 시지각적인 경험과 감상을 형성의 근간으로 삼아 의미화의 가능성을 가진다면 전현선의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림들은 그리기를 위해 수집된 이미지를 재현하는 단계를 보이고 있다.
그림이, 회화가, 작품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 것을 아무것도 아니게 남겨둔 것이라면, 혹은 그러한 것이 정말로 ‘그냥’ 행했거나 무의미로의 지향이 아닌 이상은 다른 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지만 소정의 성취를 이루어낸 청년작가들의 행보가 답습에 의한 양적인 팽창에 그치게 된다면 그들의 결과물은 피로감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크고 많은 그림과 붓질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있지만 신중하고 작은 붓질 하나가 가져다주는 감동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위해 신중히 공력을 불어넣는 것이 예술가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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