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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내담(內談)과 내담(來談)

글 김홍기

2018 아트선재프로젝트 #3:
이윤이- 내담자
5.3~6.3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이윤이, 〈귀의 말(Words of the Ear)〉 설치 전경 사진: 김연제,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이윤이에게는 대칭에 대한 매혹이 엿보인다. 중심축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이 만들어내는 대칭의 환영(〈세속적인 삼위일체(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필라델피아의 한 백화점 실내가 갖춘 대칭적 구도(〈독수리에서 만나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건물의 대칭적인 바깥벽(〈Maya(not that)〉) 등 여러 형태의 대칭적 이미지들이 이윤이의 과거 비디오 작업에 등장한다. 대칭에 대한 매혹은 자연스럽게 거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거울이야말로 완벽한 대칭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윤이는 완벽한 대칭이란 오로지 환상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어느 한편이 언제나 지배적임을 잘 알고 있다(〈나이프, 스푼, 포크〉). 그러나 환상은 때때로 현실보다 강렬한 법. 사실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게 대칭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쌍둥이에 대한 매혹을 고백한적이 있다. 서로를 대면한 쌍둥이의 모습은 일종의 거울 효과를 산출함으로써 대칭에 대한 환상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청각의 차원에서 대칭에 대한 매혹은 메아리로 형상화된다(〈메아리〉). 거울은 시각의 메아리이며, 메아리는 청각의 거울이다. 거울이 이미지를 되비춰 시각의 대칭을 실현한다면, 메아리는 사운드를 반환시켜 청각의 대칭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의 대칭, 거울과 메아리의 효과,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비극은 고립된 자아의 위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자기애와 동어반복의 닫힌 세계는 타자를 위한 출입구를 구 비하지 못한다. 자전적이고 자족적이고 자폐적인 세계 속에서 여러 인물은 단지 자아의 변장된 분신일 따름이며 여러 목소리는 단지 자아의 변조된 독백일 따름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보이스오버(voice over)나 무언의 자막은 내적 독백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작가가 직접 작성한 텍스트이든 다른 누군가의 텍스트를 인용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 위험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차라리 위험할수록 더 매혹적이다. 견고한 자아에 대한 매혹과 고립된 자아에 대한 위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칭의 매혹에 도취되면서도 폐쇄의 위험을 자각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이윤이에게 주어진다.
이윤이의 개인전 《내담자》에서도 대칭과 거울의 이미지들이 보인다. 비디오 작업 〈샤인힐〉을 보면, 벽을 사이에 두고 반복적으로 절하는 두 인물의 모습은 거울의 이편과 저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서울 근교의 한 골프 연습장의 풍경도 수직축을 중심에 둔 좌우 대칭의 구도로 제시된다. 설치 작업 〈귀의 말〉은 아트선재센터의 기둥을 본떠 수평으로 절반을 절단한 상하 대칭의 두 (유령)기둥이다. 대칭의 영상은 역시 이번에도 자아의 독백에 근접하는 듯하다. 예지몽이나 전생(前生)의 이야기 등 쉽게 소통되기 어려운 주제들이 비디오 작업에서다뤄지며, ‘귀의 말’이라는 작업의 제목도 언뜻 타자에게 발화되지 않는 내적 독백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선보인 작업들에서는 완벽한 대칭의 환상을 위반하는 돌발적인 모티프들도 빈번히 눈에 띈다. 대칭적인 골프 연습장을 마구 휘젓는 사선의 골프공들, 두 등장인물이 골프 연습장 좌우로 평행하는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불쑥 방향을 트는 장면, 화재경보의 오작동으로 등장인물들이 갈팡질팡하는 장면, 절반으로 나뉜 기둥의 하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어렴풋한 움직임, 접힌 귀모양의 기우뚱한 반사판들이 대칭의 환상을 집요하게 교란한다. 또한 이번 비디오 작업에서도 보이스오버가 자주 사용되지만 작가의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되고 여러 등장인물의 육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동일한 자아의 독백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성성(多聲性)을 확보한다.
그러므로 이윤이는 내담자다. 한편으로, 그는 견고한 자아의 세계 속에서 거울과 메아리의 대칭적인 피드백으로 만들어낸 분신들과 함께 복화술로 독백하는 매혹의 내담자(內談者)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그 세계에서 외출할 틈새를 가까스로 만들어내어 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내담자(來談者)다. 즉 이때의 내담자란 대칭에 대한 매혹과 위험을 모두 받아들인 자를 일컫는 것이다. 내담(內談)하는 나르키소스에게 내담(來談)하는 에코의 기적 같은 사건, 내담(內談)에 깃든 내담(來談)의 순간이 이윤이가 쌓아올린 언덕 위에서 문득문득 빛난다. 혹은 사이렌처럼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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