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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미술에 대한 사진적 탐구

글 박상우

그림에 대한 연구- 베일 연작
5.3~5.15
반도카메라 갤러리

 

남택운, 〈사라진 대사들 2〉, 잉크젯 프린트, 이면화, 210×210cm, 2018 ©남택운충무로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개최된 남택운의 사진 개인전 《그림에 대한 연구-베일 연작》(이하 《베일 연작》)은 국내 다른 사진전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우선 제목에서 작가는 자신의 전시가 사진전임에도 ‘그림’에 대한 전시라고 지칭했다. 게다가 어느 전시 제목에서도 볼 수 없는 표현, 즉 ‘…에 대한 연구’라는 학술논문과 같은 제목을 사용한다. 전시 디스플레이도 파격적이다. 일반적인 사진전과는 다르게 작품들이 마치 거대한 타블로 회화처럼 전시장 벽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다. 2000년 개인전 《사진의 음모》(인사아트센터) 이후, 오랫동안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다가 18년 만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긴 세월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작가가 이번 작품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대부분의 사진가는 카메라를 외부 세계 혹은 자신의 내부 세계로 향한다. 하지만 남택운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미술사 속으로 들어간다.” 무릇 진정한 작가는 자신의 삶과 밀착된 작업을 해야 한다는 테제에 충실하기로 하듯이, 미술학도이자 화가였던 작가는 자신의 시선을 실재가 아니라 미술이라는 재현의 역사로 향했다. 서양미술사의 상징인 모나리자를 차용하거나(〈그 부인들〉, 2012), 현대미술을 개척했던 세잔의 사과를 인용하기도 하고(〈그 사과들〉, 2013), 혹은 홀바인의 대사들을 현재로 소환한다(〈사라진 대사들2〉, 2018). 이처럼 카메라가 미술사로 향하기 때문에 작가는 다른 사진가와 달리, 발로 뛰지 않고 지성과 성찰을 통해 작업한다. 그의 사진은 미술사, 사진이론, 시각문화론, 영상미학에서 출발하며 이에 대한 탐구의 결과를 이미지로 형상화하기 때문에 일종의 ‘연구’가 된다. 그의 사진은 다른 형식의 글쓰기이며, 더 정확히 표현하면 ‘시각적 글쓰기’ 혹은 ‘시각적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 걸려있는 모든 작품에는 예외 없이 ‘베일’이 등장한다. 베일 뒤에는 다양한 피사체가 있다. 〈그 부인들〉에서는 알 수 없는 한 여인이 서있고, 〈그 사과들〉에서는 줄에 매달린 사과가 등장한다. 〈사라진 대사들 2〉에서는 영국을 상징하는 여러 사물이 베일 뒤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작가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이 ‘베일’은 세계에 대한 인간 인식의 근원적인 한계를 뜻한다. 인간은 언제나 특정한 시대, 공간, 문화, 관습에 얽매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 자체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다. 모나리자로 상징되는 서양미술사는 베일 속에 가려져 완벽하게 파악될 수 없다. 사과(아담과 이브의 신학의 사과, 뉴튼의 과학의 사과, 세잔의 예술의 사과)로 상징되는 서양문명(신학, 과학, 예술)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2016년 브렉시트(Brexit)에 영감을 받은 〈사라진 대사들 2〉은 브렉시트 이후 베일에 가려진 영국의 불확실한 미래를 표현한다. 베일은 결국 인간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장막, 플루서의 ‘불투명한 스크린’, 데리다의 ‘의미의 미끄러짐’이다.
《베일 연작》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구조주의 영향은 이 같은 상대주의 세계관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작가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순수주의’, ‘자기지시’와는 반대로 혼종,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 작품에는 미술사와 현대 사진이 결합되어 있으며(미술과 사진의 혼종), 아담의 태초시간과 애플의 현재가 뒤섞이고(과거와 현재의 교차), 미술과 사진과 더불어 영상, 음악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작품이 지닌 이런 혼종 경향은 단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전공한 작가의 이론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향은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미술학도, 화가, 사진영상학과 교수, 지독한 음악 마니아)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전시장 대부분의 작품을 차지하는 〈사라진 대사들 2〉 시리즈는 동일한 화면에서 사물들만 차례대로 사라지게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연속사진 형식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부모님을 여읜 작가는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했으며, 죽음 혹은 사라짐은 피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성찰한다. 사라진 대사들, 사라진 사물들, 혹은 사라질 듯이 베일 뒤에서 있는 인물은 이미 사라진 혹은 앞으로 사라질 작가의 가족, 작가 자신 혹은 우리들 자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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