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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거북이를 따라잡는 아킬레우스처럼

글 백지홍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Z n n ho Eleat s)은 하나의 역설을 생각해 냈습니다. 신화 속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도 자신보다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사의 몸을 가진 아킬레우스는 반인반신 영웅입니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을 이끌었다고 알려진 위대한 전사인 그는 달리기도 잘하고, 창도 잘 던지는 등 뛰어난 신체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느림의 대명사(그리스 시대에도 그랬나 봅니다. 제논이 아킬레우스와 달리기할 느린 동물로 거북이를 골랐으니까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니요?
제논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거북이보다 100배 빠른 아킬레우스가 100m 앞선 거북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고 칩시다. 아킬레우스가 100m 달렸을 때 거북이는 1m 앞서 나갔고, 아킬레우스가 그 1m를 따라잡았을 때 거북이는 1cm를 앞서 나가는 일이 무한히 일어나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끝내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결과지만 이 논리를 논파하기란 의외로 어렵습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이제 ‘거북이도 못 따라잡는 아킬레우스’로 불려야 하는 걸까요?
사실 이는 논리를 이용한 장난이고, 우리는 거북이보다 상대속도가 빠른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고 금방 제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가 100m, 1m, 1cm, 0.01cm로 좁혀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보다 앞서 나가게 되어있으니까요.
앞서 달려간 이를 정말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저희 기자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빠르게 취재해서 세상을 따라잡은 기분이 든다고 해도 기사로 작성될 쯤이면 이미 과거의 일이 되고, 세상은 또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같은 월간지는 사건에 앞서 미리 계획을 세워놓는 반칙(?)을 통해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곤 합니다.
그런데 서울 미술씬에서 동시간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특집은 그런 반칙을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후발주자로서 정말 헐레벌떡 따라가야 했지요. 이렇듯 여유 없이 만들어진 특집이다 보니 완성된 모습에 아쉬움도 있지만, 이런 방식이 아니었으면 담을 수 없는 생생함이 있더군요. 동시대에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젊은 작가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일부나마 이번 호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지만, 작가들이 전제하거나 공감하거나, 혹은 거부하는 요소들은 앞으로의 미술을 예측할 수 있는 힌트를 줄 것입니다.
특집 외에도 10회를 맞이한 《베를린 비엔날레》, 용산에 새롭게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의 다양한 읽을거리들을 담았으니 재밌게 즐겨주세요. 저희는 언젠가 앞서 달려나가는 세상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세상의 뒤를 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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