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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푸른 은핫물로 직조한 예술

글 김예진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 캔버스에 아크릴, 150×150cm, 1990,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소장

 

무지개 일곱 색깔 소매를 단
이성자의 해님과 달님은
열여섯 살 시골처녀처럼 아름답다.


지상의 어떤 일을 시켜도,
돗자리를 엮게 해도
모내기를 하게 해도
가지런한 이와 강한 눈동자를 가진
열여섯 살인 그녀는 해내겠지.


이성자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왜 그런 처녀가 되었지?”하고
슬쩍 물어보니
“그 뒤의 일이 시끄러워
열여섯 살의 진주에
완전히 돌아간 거에요.”라고 했다.



― 서정주, 「이성자」, 1986년 9월 15일

 


이성자(1918~2009)는 20세기 한국화단에서 이채로운 경력을 가진 미술가이다. 1951년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프랑스 화단에 깃든 뒤, 가지런한 이와 강한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세계는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래동화에서 결이 고운 처녀들이 온갖 어려운 일을 이겨내듯이 진주의 열여섯 살 소녀는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품들을 낳고 다시 어머니가 되었다. 2018년, 이성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소녀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은밀히 구축한 세계를 시간을 따라가며 보여주고 있었다.

 


태초, 어머니의 설화

이우환은 이성자의 회화에 대해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무언가를 상기시키게 하는 그런 멜랑콜리한 부분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성자가 물감을 두텁게 다져 대지의 거친 조형을 만들어낸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지만, 그가 추상의 세계에 진입하는 1950년대 말부터 작품의 제목은 ‘대지가 빛을 발할 때’, ‘천사의 땅’, ‘목신의 피리’, ‘용맹한 4인의 기수’와 같이 태초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1962년 〈내가 아는 어머니〉를 발표하고 어머니=대지의 세계를 구축한 뒤에도, ‘4월의 내 모습’, ‘1963년 10월 15일의 달’과 같이 작가의 내밀한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숨겨진 나무의 기억들’, ‘자각하지 못하는 몽상가’, ‘바람의 증언’과 같이 자연에 감추어진 비밀을 나타내는 듯한 낭만적인 제목으로 그림을 채워 넣었다. 순수한 기호로 환원된 추상화를 제작하면서도 작가만의 모티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성자는, 목판화의 칼질과도 같은 촘촘한 붓자국을 쌓아 만든 기하학적 질서 속에 어머니의 옥비녀, 돗자리, 황토, 문자와 같이 16살 소녀가 고향 진주의 추억과 주변의 자연으로 빚어낸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암호를 숨겨두었다. 

 

 

*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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