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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ESSAY

Shape of memories

글 임소담

 

 

《Shape of memories》 전시 전경 ⓒ2018.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 임소담


작은 소리

아름답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몸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네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새로운 모습보다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는데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던 작은 소리가 들리게 되는 일. 큰 소리가 확신에 찬 음성이라면 작은 소리는 말하면서 의심하는 목소리들, 이름없는 몸짓들,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그 감각.


중력

그리기와 만들기 사이에는 중력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림 속 이미지에 중력을 주려면 애써야 하지만 만들기에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만들기가 주는 ‘놓여있음’의 느낌은 휘발되는 것들을 이 땅에 머물게 한다.


습관은 몸에 새겨진 행동 길 같은 것이다. 자주 지나다녀서 편리하게 되어버린 길들. 작품을 만드는 일이 종종 내가 지은 습관과의 싸움처럼 느껴진다. 습의 속성은 과거이기 때문에 현재에 존재하려는 의도에 반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꾸 이전의 그리기로부터 달아나려는 듯이 보인다. 하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다음 그림에 또 새기고자 할 때, 손에 쥔 것이 잿더미가 되고 만다. 한 번 그린 것은 다시는 그런 식으로 그릴 수 없는 것. 달아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달아나기가 나의 습관이 된 것 같다. 달아나기로부터의 달아나기도 가능한가?


경첩

뚜껑을 열면 음악이 나오는 작은 하얀 함. 파스텔 톤의 풀, 인간,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두 손에 올라오는 크기의 이 상자를 열면 연핑크 합성 재질 천으로 내부가 둘러져 있고 동그란 거울이 붙어있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은 날 나는 이 상자 안에 병아리를 넣어 나만의 장례를 치렀던 것 같다. 나는 이 상자를 그릴 자신이 없다. 아무리 생생하게 기억하는 물건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한 것은 없다. 상자에 관해 계속 맴도는 것은 오른쪽 둘째 손가락 끝, 경첩 돌기의 촉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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