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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KOREAN ART ⑦

전북 서양화단의 개척자, 금릉 김영창

글 황정수

김영창, 〈모과〉

 

1. 근대 한국 화단과 전주 지역 화단

1909년 서울의 중인 역관 출신인 고희동이 일본에 유학하여 처음으로 서양화를 배운 이래, 평양 사람들인 김관호와 김찬영이 뒤를 이어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배웠다. 이후 경기도 수원의 나혜석, 전남 화순 출신 오지호가 있었고, 이어 대구의 이인성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며, 부산 출신으로는 임응구, 김종식이 이름을 드
날렸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각 지역의 미술 세력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의 활동이 중심이되어 한국 서양화단은 서울을 중심으로 평양화단, 대구화단, 부산화단, 광주화단 등으로 크게 나누어 발전하게 되었다. 각 지역 화단은 각기 다른 화풍을 보이며 한국 화단을 이끌게 된다.

특히 서울화단은 고희동 이후 이종우, 이제창, 구본웅, 이승만 등 많은 일본 유학생들이 등장하여 한국 근대미술 발전의 중심축이 되었다. 평양화단은 김관호, 김찬영에 이어 최연해, 문학수, 정관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울에 이어 제2의 화단으로 자리 잡았다. 대구화단 또한 그 위세가 대단하였는데 서동진, 손일봉에 이어 걸출한 이인성이 나와 《조선미전》(이하 《조선미전》)의 기린아로 일제강점기를 상징하는 화가가 되었다. 이인성의 뒤를 이어 김용조, 배명학 등이 이름을 날리며 서구 인상파 미술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한편 광주는 동양화 색채가 강한 지역이었는데, 오지호라는 통 큰 화가가 등장하며 주요한 서양화단으로 자리 잡았다. 광주 지역은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일인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지호는 세련된 인상파 화법으로 광주화단의 중심이 되어 한국 서양화단의 한 축을 지탱하였다. 이 밖에 부산 지역은 일본에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고, 일본과의 관문이었던 지정학적인 관계로 일본 문화에 쉽게 노출되었다. 구한말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미술 시장이 있었고,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서양화의 유입도 빨랐다. 그러나 대부분 일본인 화가들의 활동이었고 한국인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는 임응구가 독보적이었으며, 후에 김종식, 송혜수, 양달석 등이 나와 부산 미술을 대표하였다. 이들은 모두 일본에 유학한 선진적인 화가들이었다.

이들 몇 지역에 비해 다른 도시들은 미술 문화의 발전이 미약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대전이나 인천, 전주 등은 미술에 대한 문화적 역량이 미미하였다. 그런 중에서나마 전주는 그곳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빼어난 솜씨를 보인 금릉(金陵) 김영창(金永昌, 1910~1988)의 활약이 있어 서양화의 유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영창 이후에 그를 잇는 괄목할 만한 화가가 나오지 않아 김영창도 흘러가는 역사에 묻혀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를 회고해보면 김영창은 일제강점기 전북의 서양화단을 대표하는 매우 능력 있는 화가였다. 그는 어떤 다른 지역의 화가 못지않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화단에서의 활동도 꽤 많이 한 미술교육자이기도 하였다. 전북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양화의 대명사로 김영창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의 작품에 대한 미적 가치를 전설 속의 화가처럼 이해하고 있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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