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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 ART 1979~1994 ⑲

민중미술, 강물이 되는

글 김종길

《105인의 작가에 의한 삶의 미술전》 전시 포스터

 

1984년이 되면 ‘민중미술’이라는 한 강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1979년부터 결성을 시작한 소집단들은 1980년을 넘어오면서 새로운 시대의 미술언어를 궁리했고, 그 고민의 흔적들이 실체화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소집단들이 탄생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82년과 83년이 지나자 서로 달랐던 소리들이 화음을 만들면서 민중미술사의 물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첫 물줄기가 1970년대와 결별했던 순간은 미술평론가 박용숙이 기획한 1981년의 《현대미술 워크숍 기획전》(동덕미술관)과 그 전시의 연계 행사로 기획된 아카데미하우스에서의 토론회일 것이다. 박용숙은 전시 서문에서 “그것은 70년대와 80년의 성격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의 “사자의 목소리”와 ‘ST’의 “전위적 문제의식”, ‘서울’80’의 ‘첨예화된 성격’을 새끼줄 꼬듯 꼬았다. 그는 “세 그룹의 목소리”를 꼬아서 “현대미술의 독특한 위상”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날의 토론회 이후 ‘S.T.’는 해체됐고 그들의 문제의식은 ‘현발’에 일부 수용되었을 뿐이다. 작가들이 스스로 ‘그 소리’를 찾아 나선 것은 1982년이 되어서다.

‘의식’의 소리, 현실개념
그룹 ‘다무’, ‘전개’, ‘TA-RA’, ‘횡단’은 1982년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관훈미술관 및 별관에서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을 개최했다. 29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에는 “80년대라는 장”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고민이 함축되어 있다. 미술평론가 장석원이 대표 집필한 전시 취지를 살펴보자.

“70년대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은 아니며 그 결론은 80년대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포착하려는 80년대의 새로운 의식이란 70년대로부터 뻗어나온 끄나풀은 아니며 또 반대개념도 아니다. 70년대에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며 그것을 바닥에 깔고 더 새로운 개념, 미래지향적 의지와 현실에 침잠하여 체험 속에 길러진 정확성, 폭넓은 현실개념, 의식의 자기화… 이 모든 것들이 새롭고 날카롭게 길러질 수 있는 성향을 지칭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는 “아직 80년대의 주도적 흐름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 귀추는 주목해 볼 만하다. 그리고 잔잔하게 스스로의 의식을 삭이는, 그래서 자기의 것을 진솔하게 진술해줄 수 있는 작가들이 필요하다. 80년대는 그렇게 넓은 지평을 깔고 있으며 이 길을 꾸준히 가는 작가 군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들은 70년대의 유산이 ‘의식’인데 그것은 ‘경직된 의식’이었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구속’시켰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장하는 것이 바로 ‘의식’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그것이 정신의 객관성으로서의 통로이기 때문이며, 또 정신이 소통하는 실핏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작은 실핏줄 구석구석까지 의식은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고 그 심장의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박동하고 있는 것이 의식”이라고 말한다. 이 전시 이후 ‘다무’의 이흥덕, 홍선웅, ‘TA-RA’의 박건, 김관수, ‘횡단’의 김보중, 김진열, 장석원 등은 ‘의식’과 ‘시대정신’ 또는 ‘형상’을 결합하는 모험을 시작한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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