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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얼굴의 용도

글 윤원화

구지윤: 보라색 소음
5.18~8.19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구지윤, 〈보라색 소음〉, 린넨에 유채, 100×80cm, 2017 이미지 제공: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굳이 구별하자면 구지윤은 주로 도시 풍경을 회화의 소재로 다루었지만, 그가 천착한 주제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물리적 도시보다도 그에 충전된 감각과 감정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작가는 개개인의 인간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덩어리로 뭉치기도 하고 무방향적으로 퍼져 나가기도 하며 공간을 꿰뚫듯이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는 도시의 시청각적 진동을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처음에 이것은 도시가 무너져 내리고 그 잔해가 쌓이는 풍경처럼 표현되었으나, 상징적이거나 구체적인 형상들은 점차 음악적이고 리드미컬한 붓질에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서 얼굴 비슷한 것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처음에는 우연이 아니었을까 한다. 《보라색 소음》에는 2009년에 제작한 〈얼굴 풍경〉의 초기작이 3점 전시되었는데, 어렴풋이 얼굴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반쯤 풍경이 되어가던 화면 위에 살색 또는 약간 붉거나 푸른 기운이 있는 하얗고 불투명한 붓자국들이 덧입혀지고 그것이 다시 추가적인 붓질을 이끌어내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 같은 얼굴의 가능성은 조형적 차원과 표현적 차원 양쪽 모두에서 화면에 새로운 지층을 더했다. 주로 입방체의 표면들과 반복되는 직선들로 구성되었던 도시 풍경은 얼굴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 신체의 유기적인 윤곽에 따라 재편성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화면의 초점을 이루는 얼굴 부분에는 도시의 건조하고 익명적인 분위기와 뒤섞여 주관적 정념이 축적되었다.

2010년대 중반의 작업들은 파편화된 도시 풍경이 폭발하는 머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비교적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불투명한 색면이 바탕면의 풍경을 지우면서 얼굴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 내부에 에너지 넘치는 붓자국이 적층되어, 마치 내면의 감정이 바깥으로 분출하면서 얼굴을 터뜨려버린 듯한 모양이 나타난다. 이때 제작된 〈얼굴 풍경〉 연작은 완연히 초상화 같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과 배경의 경계는 흐려지고 얼굴의 윤곽은 좀 더 불분명해진다. 얼굴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찢어지거나 갈라지거나 소용돌이치거나 흘러내리거나 하면서 이면의 풍경을 부분적으로 가리거나 그와 뒤섞인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 들어간 2018년 신작들 중 몇몇은 굳이 ‘얼굴 풍경’이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까지 나아갔는지도 모른다. 화면은 좀 더 공감각적인 색채와 공기, 온도와 소리의 집합으로 채워졌고, 실제로 각각의 제목도 그런 방향으로 붙여졌다. 여기서 얼굴은 한 작품의 제목처럼 ‘크림색 암막 커튼’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그것은 화면을 구획하고 다시 그 구획을 흩트리면서 대상과 배경, 질서와 무질서, 외부 세계의 잔상과 내면의 공명을 조절하는 일종의 무대 장치처럼 쓰인다.

그 결과는 더 이상 서울에서 미국의 여러 도시들로, 다시 서울로 이어지는 작가의 구체적인 여정이나 그 시간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회화면은 좀 더 추상적인 것이 되었거나, 또는 좀 더 음악적인 것이 되어 관객을 맞이한다. 그것은 화가가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의 감각과 감정에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구지윤의 회화는 두터운 물감의 질감보다도 색채의 면과 선이 형성하는 운동감 속에서 평면을 초과하는 공간을 형성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들여 머물러볼 만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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