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REVIEW

무명의 대지 위를 거닐때

글 천수림

박형렬: Layers of Land
6.1~6.25
KT&G 상상마당 갤러리

박형렬, 〈Figure Project_Earth#73〉, 피그먼트 프린트, 150×120cm, 2017 이미지 제공: KT&G

 

로마 근교에 있는 프리마 포르타(Prima Porta)에 있는 리비아 별장에는 아우구스투스의 부인인 리비아(Livia)를 위한 정원을 그린 벽화가 있다(현재는 로마 마시모[Plazza Massimo]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은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한때를 그린 것이 아니다. 사이프러스 숲, 월계수, 각종 과일나무와 양귀비, 국화 등이 그려져 있지만, 봄에 피는 페리 윙클과 초여름에 피는 라벤더, 가을에 볼 수 있는 석류가 무작위로 섞여 있다. 계절과 시간이 섞여 있는 이 벽화는 우리에게 ‘개량된 혹은 이상화된’ 모방적 재현들을 보여준다. 물론 중국에서 부르는 자연이라는 말 대신 물과 산을 뜻하는 ‘산수’도 이런 이상화된 자연이다. BBC TV시리즈 〈예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나〉 진행자인 나이즐 스파이비(Nisel Spivey)는 전 세계 인구가 도시에 집중하며 사는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자연세계를 존중하는가. 왜 이러는 걸까?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닌 원초적 본능의 발로일까?’라고 묻는다.

〈Figure Project〉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박형렬 작가의 《Layers of Land》전을 보고 나면 나이즐 스파이비의 자연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Figure Project〉는 작가가 2013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는 자연 공간, 땅 위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행위(사각형, 삼각형, 원형 등 도형으로 표현)를 통해 원래 있었던 모습을 변화시킨다. 이 변화된 땅의 모습은 ‘사진’으로 기록되고, 행위(퍼포먼스)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조각적 방식으로 구현하는 기하학적인 추상의 공간과 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살결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또 다른 풍경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작 〈The Captured Nature〉(2010-2012)에서는 자연 풍경 안에서 이루어진 인물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Figure Project〉에서는 하나의 프레임이 마치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리즘 조각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 안에는 땅의 속살을 보여주는긴 삼각형의 형태(〈Figure Project_Earth#73〉) 혹은 땅에서 캐어낸 듯한 동글한 무늬들의 행렬(〈Figure Project_Earth#74〉) 등이 보인다. 〈Figure Project_Earth#69〉과 〈Figure Project_Earth#71〉은 고도로 계산된 사각의 선 배열로 인해, ‘불가해한 건축적 풍경’이거나 ‘한 폭의 그림’처럼 읽힌다.

여기에서 ‘장소’로서의 땅이 아니라 ‘그저 땅’이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대지의 빛깔은 빛과 날씨, 혹은 특정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성분으로 인해 땅의 색감과 촉각이 모두 다르며 다채롭다. 대리석의 흰빛이 보이거나(〈Figure Project_Earth#53〉) 갈색이 섞인 파란색, 염전의 소금 꽃을 연상시키는 물결들이 보이는 이미지(〈Figure Project_Earth#68〉)는 추상적인 풍경으로 읽힌다. 이때 그가 선택한 땅은 ‘특정한 장소’로서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만다. 그가 보여주는 대지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자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시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땅’의 본질에 다가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비평가 리즈 웰스(Liz Wells)는 “땅(Land)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 하지만 풍경(Landscape)은 문화적 구성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작업은 오히려 몸의 움직임으로 땅(서해안 간척지)의 균열을 메우고 있다. 메우려는 행위는 오히려 그곳이 균열이 발생하는 지역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존에 했던 작업들인 대지 위에 거대한 실로 무늬를 만든다든가, 대지를 천으로 감싼다든가 하는 공간을 점유했던 행위와는 다르다. 무명의 땅이었던 그곳은 그의 구성과 개입을 통해 자연을 너머 ‘의미를 지닌 서사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가 만든 인공의 풍경 위로 이제는 다른 시간이 스며들 것이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