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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지나고 나니 남겨진 것들

글 이주희

유병수 10주기 유작전
5.3~5.30
안상철미술관

유병수, 〈소천기〉, 혼합매체, 93.5×59cm, 1998 이미지 제공: 안상철미술관

 

유병수 작가의 작업에서 특징을 찾는다면 그중 하나는 보고자 하는 대로 볼 수 있는 회화적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회화라는 하나의 장르에 평생을 천착했다. 50년에 달하는 그의 화업은 몇몇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형식모색-구상적 표현-혼합 기법-모노톤의 경계-진지한 놀이”(장미진) 등은 지나온 시간에 따라 그의 작업세계를 드러내는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키워드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작가는 그러한 여정에서 장르적 구속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표현의 정체에 빠지기보단 학습과 시도, 숙달과 심화 등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얻어낸 인간의 다양한 면면을 화면으로 옮겼다. 이는 점·선·면·색의 요소들을 고루 사용해가며 미술과 회화 자체에 대한 연구를 이어간 흔적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화업의 중반 이후부터는 본인의 삶으로부터 발하는 감정의 움직임을 회화적 표현으로 수용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한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그의 작업은 회화적 구성요소들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화업을 시대별로 구분해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유병수 작가의 작업 전반은 캔버스의 영역을 고루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의 화면에서 한쪽에 치우친 선들이 면을 만들어 색면을 이루고, 그것에 뒤덮이고 지워진 선들이 더해져 추상적 표현에 임하는 작가의 도상학적 해석을 볼 수 있었다면, 1980년대의 화면에서는 화면 전체를 비교적 균질하게 뒤덮고 있는 〈파흔 81-6〉(1981)을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엔 1970년대부터 사용된 나이프의 비중이 늘어나며 붓질과는 달리 예리하게 맺힌 물감의 층이 부각되었고, 화면 일부에 표현이 집중되었던 과거와 달리 화면 전체에서 밀고 당기는 듯한 나이프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모노톤으로 이행된 색상은 작가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기도, 회화적 표현의 변화를 위한 작가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1980년에 들어 역사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라는 인간을 마주하며 적극적으로 미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고심했다. 비슷한 시기 작가의 한 작품 표제에 표기된 ‘1983.9.1’은 아웅산 폭탄 테러를 가리킨다. 나누어진 이념 속에서 서로에게 총칼을 내밀어야 했던 현실은 물감과 나이프의 거칠고 날카로운 ‘잔해’로 남겨졌으며 작가 개인의 화업에 있어서도 보다 짙고 깊은 인간 삶의 애환과 예술로서 현실보다 먼 곳에 닿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1990년대의 〈소천기(召天記)〉와 〈통천문(通天門)〉이라는 작업에서 소천기는 하늘을 부르는 소리를, 통천문은 하늘로 통하는 문을 그린 것으로 유추된다. 이 시기 작가는 운명을 달리하는 혈육을 지켜보며 왔다가 떠나가는 인간의 삶을 숙고하는 시기를 거친다. 그 결과 재료적 측면에서 유화와 아크릴을 넘어 한지·골판지·석회·핸디코트 등으로 종을 막론한 확장을 이루었으며 기법적인 면에서도 콜라주와 데콜라주 등의 기법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작가가 지난 시간 사려해왔던 인간의 생과 사를 조금 더 넓은 범주에서 목격하며 겪어낸 감상이 새로운 형식으로 이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을 긋고 그리고 재료를 붙이는 행위가 넓은 창작의 영역에서 형성과 생성의 의미를 담고 작가의 본질적인 생명력을 반영한다면, 재료를 지우고 뜯어내고 그것을 다시 붙이는 행위는 절제와 연마 혹은 중용으로 향하는 작가의 정신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이후,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나며 한국의 예술계 역시 수많은 예술가들을 떠나보냈다. 그러고 나니 보이는 것은 시대를 주고받으며 자라난 그들의 정신과 공력이 담긴 유산이다. 그러한 정신과 유산은 무엇으로도 쓰일 수 있는 역사적 사료이자 무엇이든 자라나게 할 수 있는 값진 문화적 토양이 될 것이다. 그리움을 넘어, 그것이 회고이든 추모이든 남겨진 귀한 것을 값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방법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행하는 것으로 남아있는 자들의 작은 소임을 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랬을때 그것은 미술과 예술을 해 나가는 자들의 값진 사료이자 문화적 토양으로서 환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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