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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당위로서의 재현

글 김연주

부재(不在)의 기술(記述)
6.11~7.22
예술공간 이아

정현·한진오, 〈미정〉, 미디어 기반 설치, 2018 이미지 제공: 예술공간 이아

전시 《부재(不在)의 기술(記述)》을 기획한 이탈은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재현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에서 이번 전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질문과 마주하여 이탈은 예술에 있어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일을 가능성이 아닌 당위성의 문제로 보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정치와 사회를 다룬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31명의 국내외 작가들은 주체의 특권이었던 기술을 타자의 권리로 돌려놓음으로써 당위로서의 재현을 실천했다. 작가들은 역사에서 기술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타자를 기술했다. 역사의 기술은 주체를 영웅화한다면, 예술의 기술은 타자를 드러낼 뿐이다. 역사는 주체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봉사하지만, 예술은 그러한 권력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당위로서의 재현으로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주체의 권력은 약화된다.

전시 제목과 설명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부재’를 타자의 존재 방식으로 본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부재라는 단어와 존재라는 단어의 모순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지만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시 질문해야 한다. 누가 타자를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하게 했는가? 타자가 자신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탈의 전시 서문에는 “… 들어도 들리지 않는 ‘무지’, 들려도 듣지 않으려는 ‘무시’,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편견’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타자를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들이다. 이처럼 타자는 존재하지만, 주체에 의해 부재의 상태에 놓인다. 따라서 작품이 타자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관람객은 타자와 타자의 존재 방식을 깨닫게 된다.

4.3에 관해 침묵과 망각을 강요당한 제주인, 편견의 시선 아래 공격의 대상이 되는 여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동양인,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된 민족, 도시에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 인간에게 파괴당하고 있는 자연 등이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 재현된 타자들이다. 작가들은 타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부재의 상태로 몰아가는 은폐된 억압과 폭력을 드러내며, 타자의 부재를 용인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또한 관계그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타자를 기록하여 서술하는 작품 중에서 《부재(不在)의 기술(記述)》은 특히 미디어 아트에 주목했다.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으며, 관람객이 작품과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는가에 따라 비디오 상영, 상호작용, 미디어-기반 설치미술, 인터-미디어 이미지로 나누어 참여 작가를 소개했다. 이번에 전시된 미디어 아트의 대부분은 카메라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카메라의 눈은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았던 세상의 구석이나 사소한 일상을 바라본다. 즉 카메라의 눈은 주체의 시선이 아닌 타자의 시선이다. 컴퓨터 기반의 이미지는 현실의 이미지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을 만든다. 그 비틀어진 현실 사이로 타자가 보인다.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작업은 제주도 작가에게는 숙명처럼 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4.3은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작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해야 했고 말해 왔다. 이것이 제주도가 《부재(不在)의 기술(記述)》이 예술에 요청하는 윤리적 실천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부재의 존재가 타자라면, 기술할 수 없는 것의 기술이 예술이다. 모순이 모순을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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