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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EXHIBITION

유쾌함 속에 가려진 인간의 고뇌와 성장, 니키 드 생팔

글 구지훈

《니키 드 생팔展_마즈다 컬렉션(Niki de Saint Phalle works from the Masuda collection)》
6.30~9.25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니키 드 생팔展_마즈다 컬렉션(Niki de Saint Phalle works from the Masuda collection)》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바야흐로 ‘페미니즘’의 시대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의 서사와 역사적 흐름 아래 쓰여 온 인류의 역사 하에서 많은 여성들은 재능을 강제로 억압당하고 그 이름을 박탈당했으며, 무엇이든지 조금만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마녀’라는 이름으로 제거당해 왔다. 작년에 타계한 미술사학계의 거장,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1971년에 발표했던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는 그간 여성 예술가가 당해온 부당함에 대해 처음으로 거대한 문제제기를 한 기념비적인 논문인데, 이제는 서양미술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가 바로 이 논문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재부각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이뤄진 아르테미시아의 재발견은 그의 회화적 문법이나 작품 내용과 함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시도 자연스레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게 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성폭행 피해 여성으로서의 아픈 과거사가 실제로 예술가로서의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유디트〉 시리즈는 분명, 예술을 통한 남성에의 분노와 저항의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가 아쉬운 것 또한 바로 이 부분이다. 아르테미시아에 대한 해석은 많은 부분들이 이러한 페미니즘적 성격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 예술가로서의 그의 면모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실제로 예술가 스스로도 그러한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히 멋있고 당당한 ‘여성’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를 좀 더 ‘예술가’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접근은 어떨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나 프리다 칼로를 예술로 성차별에 맞선 ‘여성’투사로 인식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아르테미시아는 미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특히나 아르테미시아라면 더더욱, ‘예술가’로서의 면모에도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etto Caravaggio)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였고 이후 그의 화풍을 따른 수많은 카라바조 풍의 후배 예술가들(Caravaggeschi)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미술사로 10년을 유학한 필자의 견해로, 카라바조 본인 이후에 가장 카라바조스러운 화가를 꼽으라면 그 인물은 생각할 것도 없이 아르테미시아일 것이다. 카라바조 회화의 특징은 강력한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잔혹하지만 가감 없는 구성, 섬세한 감정의 묘사, 이 모든 면에서 아르테미시아와 동시대의 어떤 화가가 그보다 앞에 놓일 수 있을까. 요컨대 ‘여성’예술가로서도 독보적이지만 카라바조의 후계자라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도 아르테미시아는 단연 첫 손에 꼽혀야 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를 고정된 이미지와 용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그를 이해하는데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노클린이나 폴록(Griselda Pollock)의 노력 또한,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재발견만큼이나 한 명의 당당한 예술가로서의 재평가 작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서설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를 길게 언급한 것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니키 드 생팔 역시 아르테미시아와 마찬가지로 가슴 아픈 과거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겪어야 했으며, 심지어 그의 경우는 친부에게 당한 폭행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경험 외에도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이어서 늘 여성적이고 순종적인 태도를 지속적으로 주입 당했던 니키 드 생팔의 유년기는 결코 행복하고 편안했으며 즐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초기작들은 이러한 유년시절에 대한 분노와 치유,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를 일약 미술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로 떠오르게 만든 초기의 ‘슈팅 페인팅(Shooting Painting)’은 젊은 시절의 그가 내보인 처절한 저항, 그리고 뜨거운 분노의 표현과 정확히 맥락이 맞닿아 있다. 본 전시의 초반에 자리한 〈붉은 마녀(La Sorciere Rouge)〉는 본고의 초반에 필자가 언급했던 대로 긴 역사에서 오랫동안 ‘마녀’ 취급을 당해온 수많은 보통 여인들을 모두 오마주한 작품으로도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마녀의 가슴 속에는 고귀하고 순결한 성모 마리아가 자리하지만, 그러한 그의 왼손은 자신의 성기를 향하고 있다. 성스러운 존재인 여성도, 성적인 유혹도 모두 한 몸에 갖고 있는 여성은 결코 마녀가 아닌, 평범한 하나의 여성이자 인간일 뿐이라고 말하는 니키의 외침과 절규가 들린다. 본 전시의 도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니키 드 생팔은 “여성이 마녀나 성모라는 복수의 역할”1을 하고 있으며, 가장 집중도와 몰입도가 높은 붉은 색으로 인물을 뒤덮어 성녀(聖女)와 마녀(魔女)가 다른 존재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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