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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것을 바라보는 것

글 노경화

노경화, 〈신화에 흡수되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약 132×208cm, 2018나는 불편한 것에 시선이 간다. 나는 사회 속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폭력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드러나지 않는 폭력을 찾고는 한다. 숨어있는 폭력 중에서도 나의 최대 관심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더 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여성과 관련된 폭력 상황을 보고 자랐고 들어왔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의 작업을 이 방향으로 이끌었다. 폭력은 만연해 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의 작업은 이 아이러니함을 표현하고 있다. 비교적 밝은 색상을 사용하고 폭력은 여러 형상 속에 숨겨져 있다. 열대 나무의 형상이나 파편화된 신체, 천사의 모습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형상들은 드로잉에서부터 나타난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작업에서 드로잉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회화는 드로잉의 집합이며, 드로잉은 소서사의 집적물이다. 나는 작은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것들이 쌓여만들어진 거대한 퇴적물을 들여다본다. 나는 발굴자이자 폭로자이다. 이 작은 이야기는 나의 머릿속에서 가공을 거쳐 상징물로 바뀐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세공인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지닌 드로잉과 형형색색의 물감이 섞이며 폭력의 그림이 완성된다. 바로 알아볼 수 없는 숨겨진 폭력의 이야기가.
 

최근의 작업에서는 노란 계열의 색이 주로 등장한다. 이것은 빛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빛, 성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빛 같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 모성 숭배와 창녀/성녀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모성과 성녀에 대한 숭배는 오히려 여성의 삶을 옥죄인다. 그와 더불어 작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얼굴에 날개만 달린 천사의 이미지는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 감시자는 여성으로서의 덕목, 출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바라보는 역할을 한다. 나의 작품 속에서 이 감시자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 그 자체이다. 열대 나무 역시 여성의 기능(출산의 기능)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 대한 상징이다. 열대 나무는 2016년 제주도에서의 경험 때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제주도의 토착 식물이 아니었다. 휴양지의 느낌을 내기 위해 제주도에 옮겨 심어진 이 나무들의 이야기는 이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제주도의 열대 나무들은 풍토가 맞지 않아 건강치 못하다. 때문에 나는 이 나무들을 드로잉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회화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의 드로잉과 회화에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 가능한 것이 뒤섞여있다. 존재 가능한 것은 시각적 상상이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네모난 동그라미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물리 세계에서는 존재 불가능하다. 나는 존재하는 것, 또는 했던 것, 할 수 있는 것을 화폭에 옮긴다.
 

나의 작업에는 점점 추상적인 요소가 덧붙여지고 있다. 거친 붓질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을 만들어낸다. 물론 의미가 없진 않다. 감정을 물질로써 치환하는 과정이다. 나의 작업은 내면에서 외부로, 다시 내면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외부의 상황을 작업으로 옮기며 생기는 복잡한 감정, 떠오르는 나의 기억이 붓질로 나타나고 있다. 불편한 상황과 감정, 기억을 마주하며 나의 작업은 변화해 나간다.
 

숨어있는 불편한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나의 작업이다

 

노경화(b.1989) 《생략되는 것으로부터》(2018, 갤러리 밈), 《복진의 삶》(2017, 아트스페이스 오), 《입김이 나오지 않는 사람과 풍경들》(2016, 오!재미동 갤러리)을 포함하여 6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17년도 ‘서울디지털대학교 미술상’ 입선, 2016년도 ‘겸재 내일의 작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http://gyunghwa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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