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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없는 그림

글 윤미류

윤미류, 〈They Can Boil Potatoes〉, 패널에 유채, 97×103.3cm, 2017

내 안에서 최종적인 명확성을 갖는 언어로 만든 나의 것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의 연원을 따질 수도 없게 흐릿해지거나 수치(羞恥)로 폐기될 상황에 놓일 때마다, 순간순간 무언가에 의미를 두어 구분 짓고 기록하고 아끼는 등의 행위가 굉장히 무용하게만 여겨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부산물은 대개 아둔한 형태로,― 마음속으로 X를 긋는 것, 신속하게 그려지는 것, 무슨 이유에서든 후대를 떠올리는 것, 나르시시즘을 알아보는 것, 어린아이 앞에서도 말을 더듬는 것, 울먹거리는 것―어떤 전망을 갖는 일이 그러한 모양으로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림과 나의 보다 나은 형태를 위한 거리두기를 지속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승인된 영역에 포괄되지 않는 예외와 예기치 않은 단락에 몰두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들은 수없는 망상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열패감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위와 감정들도 결국은 쉽게 캡처될 수 있는 장면의 연속임을 잊지 않는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것에서 언제라도 달아날 수 있게 내 자신 속에 상대보다 더 큰 운동량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운동량으로 나 또한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윤미류(b.1990) 작가는 어떤 질서와 범주 바깥에 위치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를 들여다본다. 중심이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것, 상부구조보다는 하부구조에 위치한 것, 성숙의 지표에서 멀리 떨어진 것들은 그러한 세계를 전하는 회화적 바탕이 된다. 《Pipe; Hole; Basement》(2018, 상업화랑)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miryuy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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