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WORLD ART

아르노 링크, 1세대 라이프치히 화파와 신 라이프치히 화파

글 이정훈

《아르노 링크. 회화를 그리다!(Arno Rink. Ich male!)》 | 4.18~9.16 | 라이프치히 조형예술박물관(Museum für Bildende Kunst Leipzig)

아르노 링크, 〈상승 I(Aufstieg I)〉, 하드보드에 혼합재료, 170×137cm, 1985, 라이프치히 조형예술박물관 소장

2017년 9월 5일.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er Schule)의 2세대이자 신 라이프치히 화파(Neue Leipziger Schule)의 선구자 아르노 링크(Arno Rink, 1940~2017)가 77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라이프치히 회화의 구세대와 신세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점이며, 오늘날 회화 열풍을 이끄는 네오 라우흐(Neo Rauch), 팀 아이텔(Tim Eitel), 틸로 바움게르텔(Tilo Baumgärtel) 등의 대표 작가들이 사사한 교육자이다. 1987년부터 94년까지 라이프치히 그래픽 서적예술대학(Hochschule fü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의 총장으로 재직하며, 89년 독일 통일 이후의 혼란 속에서 학교를 이끌었다. 그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라이프치히 화파는 지금까지 회화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다.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 공간을 마련했고, 라이프치히 조형예술박물관(Museum für Bildende Kunst Leipzig)은 회고전 《아르노 링크. 회화를 그리다!(Arno Rink. Ich male!)》를 열었다. 이번 전시는 1965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작가가 제작한 약 200여 점의 작업 중에서 선별된 65점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전시 기획 과정에 참여한 사실은 이 전시의 중요성을 반증한다. 그의 회고전은 단순히 라이프치히 회화의 세대를 이어주는 인물로서 아르노 링크를 내세우지 않는다. 한 명의 화가로서 어떤 삶을 살았고, 그가 마주한 시대를 어떻게 캔버스에 담았는지를 살피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철학과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시대의 회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해방까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회화적 영역을 확보한 것과는 다르게 그의 초기작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시대적 풍토가 짙게 묻어있다. 1940년 독일 중부의 튀링겐(Thüringen) 주에서 태어난 그는 62년부터 라이프치히 미술대학교에서 수학하여 1세대 라이프치히 화파로 불리는 베르너 튑케(Werner Tübke)와 베른하르트 하이치히(Bernhard Heizig) 아래에서 회화를 배웠다. 당시 구동독은 사회주의 이념과 그 시스템을 선전하는 문화 예술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라이프치히 미술대학교 학생들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노동자를 비롯한 무산 계급의 일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및 집회의 모습이 작업의 소재로 주로 등장했다. 아르노 링크의 작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