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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숙희, 기세와 기운으로 표출된 현상과 본질에 대한 사유

글 김상철

구숙희, 〈여향(餘香)Ⅱ〉, 한지에 먹, 혼합재료, 74×142cm, 2018

주지하듯이 수묵은 매우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조형체계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통해 축적된 풍부한 조형 경험은 바로 동양회화 전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함축과 절제를 통한 금욕적인 화면은 수묵의 특징이다. 이는 가시적인 외부세계의 현상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가변적인 현상을 넘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묵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 먹을 사용하고 붓을 이용했느냐 하는 도구와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수묵을 물질이 아닌 정신이라 말하는 것은 바로 이를 강조함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구숙희 작가의 작업은 본격적인 수묵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작업 전반을 지지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역시 수묵의 요체에 부합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자연의 한 부분을 취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객관적이거나 생태적인 특성, 혹은 상태를 묘사하지 않는다. 커다란 나무와 그 주변의 숲이나 풀과 같은 작고 소소한 경물들의 조합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넉넉한 공간의 운용과 거침없는 발묵 그리고 독특한 운필은 작가의 관심이 작업의 대상이 되는 사물들의 객관적인 상태를 묘사하거나 재현함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분명 일정한 기세와 기운을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을 단순한 자연 서정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자연관은 외부의 사물들을 동물이나 식물 등의 물질로 구분한다. 심지어 인간 역시 인물로 표현하며 물질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에 반하여 동양의 자연관은 모든 사물을 살아 있는 의미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산수, 화훼, 영모, 초상 등으로 장르를 구분한다. 이는 단순히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확연한 인식의 차이이다. 모든 사물을 기운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자연관이다.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나무나 풀 등은 그 자체의 형상 표현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된다. 호방하게 느껴지는 화면의 역동성은 바로 그 기운을 표출하기 위한 조형적 수단인 셈이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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