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TOP

EDITORIAL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서

글 백지홍

2018년을 마무리하는 특집의 주인공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백남준아트센터’입니다. 백남준(1932~2006)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실험적 작품 세계와 사상이 뻗어나간 영역은 미디어아트라는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광범위한 영역입니다. 때로는 급진적이었던 그의 작품세계는 타계 10주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래의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백남준 작가의 이름을 딴 백남준아트센터는 움직임이 다소 느리기 마련인 공립기관임에도 지난 10년간 실험적 면모를 보여온 흥미로운 기관입니다.
‘백남준’, ‘아트센터’, ‘10주년’ 그리고 이 큼직한 덩어리들을 묶은 ‘공유지’라는 담론까지, 하나의 특집에 담으려다 보니 처음 계획보다 다소 긴 기사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자분들에게는 더 잘된 일입니다. 특집을 구성하고 있는 여덟개의 기사가 네 가지 주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루며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공유지라는 주제와 백남준아트센터가 어떠한 지점에서 만나고, 그것이 오늘날 어떠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유지라는 주제에 관심이 가신다면 꽤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12월호를 만들면서 백남준아트센터 10년의 역사를 만들어온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특집 외에도 많은 기사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취재라는 것이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일이고, 전시 등 미술 행사 대부분은 개인이 온전히 만드는 일이 아니다 보니 월간지를 만드는 일은 매달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미술잡지를 만들어온 지난 몇 년간 만난 이들의 많은 경우가 인적, 물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충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인 시간, 심지어는 자신의 건강까지 깎아 가며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술계에서 의미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적합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신의 열정을 원료 삼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이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느니 그만두라고 쉽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행하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멈추지 않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미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런 말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바에 망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망해도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일 것입니다. 설사 망한 후에 더 나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관망할 수 있는 이들이겠지요. 무언가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품이 드는 일이고, 하나가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유지하는 것보다 더욱 더 많은 품이 드는 일이기에, 쉽사리 망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서 정말 망하거나 사라져야 할 것이, 노력하고 있는 이들 자신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한국 문화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규모가 이른바 문화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점은 ‘그 많은 예산은 왜 노력하는 이들에게 도달하지 않는가’일 것입니다. 현재 논의 중인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는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까요. 노력하는 이들 앞에 장애물들을 던져놓은 ‘블랙리스트 사태’ 연루자들에게 주어진 최대 ‘정직’이라는 징계는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을 만큼 합당한 것일까요. 저는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눈길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THIS DIRECTORY

THIS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