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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민경갑 “예술가의 정체성을 지켜라”

글 백용현

민경갑 〈永劫의 命 18-5〉 화선지에 먹, 채색 112×162cm, 201811월 9일, ‘한국화의 날’ 선포 1주년을 앞두고 한국화의 날 성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산 민경갑(b.1933)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15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제37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유산 민경갑 작가는 투병 중임에도 자신을 찾은 『미술세계』 취재진을 반갑게 맞으며 한국화의 날에 꼭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한국미술의 미래를 염려하는 민경갑 작가는 입이 마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열정이 꿈틀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한국 미술계에서 함께 활동하며 알고 지냈고 오랜 기간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던 그와 나눈 대화는 필자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경갑 작가와의 대화를 정리하여 소개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살아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 그림을 그린 시절에는 예술가들이 대우를 받지 못할 때일 텐데 어떻게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제가 어렸을 때 주변에서는 다들 의대에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생물반에 들어갔지요. 해부학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림을 ‘쓱’ 하고 그리니까 선생님이 놀라서 생물반에 있을 게 아니라 화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때는 공부하는 책들도 마분지에 인쇄한 형편없던 책이었거든요. 당시 대전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버지인 백양 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뵈었더니 “나는 갈 걸세.”라는 거예요. 그래서 “왜요?”하고 물어보니 “여기 한밭이예술가가 있을 때가 안돼.”라고 말하는데 그때는 그 뜻은 모르고 서운하기만 했어요. 그렇게 미술선생도 없이 혼자 그림을 그렸는데, 마침 서양화가 이종학 씨가 대전에 온 거예요.그래서 중구 10번지일 거야, 유곽촌에 방을 하나 얻어서 거주하는 이종학 씨에게 찾아갔어요. 그래서 “제가 화가가 되려고 합니다.”라니까 절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기가 꿈이 컸는데 결국은 이 모양이라고, 절대 예술가, 환쟁이가 되면 안된다, 큰일 난다는 거예요. 그때 들은 ‘절대’라는 말이 제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절대 안 된다고? 내가 절대로 화가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다가 당시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은 부산에 가서 시험을 봤어요. 18시간인가를 걸려 화물열차를 타고 갔는데 그게 참 떨어질 시험인데 붙게 되어서 미술의 길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송도에서 시험을 보는데 주제가 ‘육각형 목기에 사과가 5개 있다. 해는 동쪽에 떴다.’라고 제시되었어요. 그걸 그려야 하는데 주변을 보니까 다들 잘 그려요. 그러다가 내 그림을 보니까 해가 서쪽에 떠 있어, 에이 할 수 없다 하고 지우개로 대충 지우고 거칠게 그림을 완성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질감 표현으로 보여서 ‘이것 봐라, 싹수가 있겠는데’ 하고 뽑힌 거죠. 학교에 들어가 보니까 전부 천재들이야. 그림을 다 잘 그려. 그래서 저는 죽어라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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