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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백남준+아트센터+10주년+공유지

글 편집팀

올해로 백남준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2001년 백남준 작가와 경기도 지자체가 함께 아트센터의 건립을 논의하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2008년 10월,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미션으로 문을 열었다. 백남준 작가가 생전에 직접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명명한 만큼, 백남준아트센터는 그동안 백남준 작가의 예술적 사상을 창조적, 비판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전시, 퍼포먼스, 학술, 교육 프로그램을 실천해왔다. 백남준 작가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를 선보여온 것처럼, 건립 초기부터 퍼포먼스와 미디어를 적극 미술관으로 불러들이고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노력했던 백남준아트센터는 이제 다양한 예술 활동들이 교차되는 동시대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남준아트센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를 위해 백남준아트센터가 선택한 키워드는 바로 ‘공유지’다. “예술은 사유재산이 아니다.”라고 말한 백남준의 선언으로부터 출발하여 개관 10주년 사업의 모토를 ‘예술 공유지, 백남준’으로 설정하고, 미술관을 어떻게 공유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전시 《#예술 #공유지 #백남준》과 국제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 10’ 《미래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 공유의 개념을 미술관 내·외부의 사람들과 실제 실험해보는 《#메타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미술세계』는 백남준아트센터 10주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들을 탐색해가며 ‘공유지’의 가능성을 독자들과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한 전시 하이라이트와 국제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소개를 통해 백남준아트센터의 10년의 성과를 돌아본다면, 10주년 사업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한 이수영 학예연구사의 기획노트, 윤원화 필자의 《#예술 #공유지 #백남준》전 리뷰, 공유지의 가능성을 담론적으로 살펴본 조선령 필자의 글을 통해 공유지로서의 미술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백남준아트센터가 10년간 축적해온 성과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 또한 존재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오랜 기간 터를 닦아온 학예연구사들의 집담회에서는 좀 더 거리를 두고 백남준아트센터를 바라본 시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안소현 필자의 글은 백남준아트센터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공유지로서의 미술관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공유지’는 백남준아트센터만의 그림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미술관들이 언젠가는 함께 모색해야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공유지가 단지 이상적인 그림으로만 머무를 것인지, 현실에 닻을 내린 우리 모두의 노아의 방주가 될 것인지는 결국 그림을 그려가는 사람들의 몫일 테다. 백남준아트센터 10주년 프로젝트들을 통해 공유지로서의 미술관이 현실화될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보기를 바란다.


목차

SPECIAL FEATURE 백남준+아트센터+10주년+공유지

 

백남준아트센터 10년의 기록_김정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_장서윤
백남준아트센터 서진석 관장 인터뷰_백지홍
10주년 기획 프로젝트 ‘예술 공유지, 백남준’ 기획 노트: 예술 공유지 백남준_이수영
《#예술 #공유지 #백남준》 리뷰: 공유지로서의 미술관_윤원화
《#메타뮤지엄 #프로젝트》_장서윤
공동체, ‘공통적인 것’, 그리고 예술_조선령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들의 집담회(集談會)
백남준아트센터의 문을 닫기 위한 몇 가지 제안_안소현

 


『미술세계』는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하이라이트 전시를 살펴보았다. 지난 10년간의 자취를 따라가 봄으로써 백남준아트센터의 미션인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위해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 활동에 대한 실천이 어떻게 전시로 구현됐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이라이트 전시와 더불어 소개되는 10년 간의 국제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과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또한 백남준아트센터의 10주년을 돌아보는 유의미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 김정아, 「백남준아트센터 10년의 기록」 中

 


10주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10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심각하게 10이라는 숫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 2008년부터 우리가 겪어왔던 시간들이 자꾸 되살아났다. 건물 완공식으로부터 개관전, 계속되는 전시와 퍼포먼스와 심포지엄들, 매년 백남준의 기일과 생일, 센터와 재단 시스템의 변화, 그 굴곡진 변화가 만드는 역사, 외부 환경의 변화, 바뀌는 정권들,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역사들이 생각났다. 백남준아트센터라는 기관의 성장과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것들은 유형의 자산이 결코 아니었다. 도슨트 및 자원 봉사자 커뮤니티, 교육, 작가들, 강사들, 협업자들, 관객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많은 시간 동안 백남준아트센터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백남준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에 스위치를 올렸다. 그렇게 보낸 10년의 시간을 축하하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고자 하는 회의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개념들을 그러모았다. 래디컬-급진적, 프랙시스-실천, 커먼스-공유지, 오픈-개방, 플랫폼, 참여, 나눔, 변화, 평가, 실험, 공동체, 정치 사회적 환경, 예술에 대한 신뢰, 지속가능성, 대중, 다중, 관객… 우리는 10년 전 처음으로 만든 미션 스테이트먼트였던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주어의 자리를 슬쩍 바꾸어 놓았다. 예술 공유지, 백남준.

- 이수영, 「예술 공유지 백남준」 中

 


전시는 늘 하나의 의도나 메시지로 환원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힘들의 교차점이 되지만, 백남준아트센터의 개관 10주년 기념전 《#예술 #공유지 #백남준》은 특히 더 그렇다. 센터가 처음 문을 열던 2008년부터 지금의 2018년까지 지난 10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이는 단순히 지난 십 년을 결산하는 역사적 질문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십 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더 어려운 문제로 이어진다.
이에 백남준아트센터는 예술을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통의 세계를 만드는 일로 보았던 백남준의 유산에서 출발하여, 미술관의 공공성과 이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재검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전시와 함께 진행되는 《#메타뮤지엄 #프로젝트》와 국제심포지엄 《미래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의 핵심 키워드는 ‘공유’다. 여기서 미술관은 작가와 기획자가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는 고전적인 모델을 넘어, 미술관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학자와 연구자 등, 다양한 유형의 방문자, 협력자, 매개자들이 미술관 공간을 능동적으로 점유하고 각자의 공유지로서 미술관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윤원화, 「공유지로서의 미술관」 中



《#메타뮤지엄 #프로젝트》는 이번 백남준아트센터 10주년 기념하여 진행되는 일련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행사이다. 전시 《#예술 #공유지 #백남준》과 국제 심포지엄 《미래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가 공유를 주제로 하면서도 일반적인 미술관 문법으로 작동되는 것임에 반해, 《#메타뮤지엄 #프로젝트》는 그 공유의 개념을 실제로 실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관장, 학예사, 안내 데스크, 어셔, 도슨트 자원봉사자, 공간 설비 관리자 등)뿐만 아니라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미술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공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메타뮤지엄 #프로젝트》가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바로 이 사람들이다. 백남준아트센터라는 공공의 장소가 그동안 어떤 곳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장소가 될 수 있을지, 미술관은 누구를 위한 곳인지, 어떤 사람들을 환영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했는지, 우리가 함께 나누고 지켜야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메타뮤지엄 #프로젝트》에 담겨 있다.

- 장서윤, 「미술관을 공유하는 방법, #메타뮤지엄 #프로젝트」 中

 


공통적인 것은 사회의 기초이지만, 그 존재는 쉽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공통적인 것을 끊임없이 사적으로 탈취하고 소수의 소유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 사적 탈취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되찾아오는 것이 오늘날 혁명적 세력 앞에 놓인 과제라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에 대항하는 개인의 자유라는 근대세계의 정치적 지향점을 반대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사유화를 원리로 삼는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의 자유가 더 이상 급진성을 가질 수 없다는 딜레마를 이들을 꿰뚫어 본다. 이제 본래적인 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적인 것이다. 사적인 것은 상황에 역행하는 반동적 힘이 된다. 공통적인 것을 사유화하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생산의 걸림돌이 된다. 이렇게 되면 해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초로 원래 존재했던 것(그리고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는 것)을 되찾아오는 일이다.

- 조선령, 「공동체, ‘공통적인 것’, 그리고 예술」 中 


지난 10년의 경험이 현재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수영 | 백남준아트센터는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에 속해있어서 예산과 사업 계획이 일찍 나오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보통 2, 3년 정도를 내다보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한다. 학예팀 내에서 각자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트센터에서 필요한 전시는 무엇인지, 센터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적어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결국 필요한 것들이 정리되곤 한다. 백남준이라는 한 작가를 10년 동안 연구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며 생긴 깊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전시 만드는 스킬도 늘었고, 관람객들을 상대하는 방식도 개선되는 등 아트센터가 안정화 된 데에는 내부에서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것도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장서윤,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들의 집담회(集談會)」 中 


 

백남준은 비디오아트 미술관이 2010년 문을 열어 22년간 지속하다 그의 나이 100살이 되는 2032년에 문을 닫을 것을 제안했다. 위의 구절이 실린 글 제목처럼 백남준은 역사적 특이점이 되는 숫자를 좋아했다. 저 숫자들 중 어느 것에 주목하던 간에 중요한 것은 백남준이 꿈꾼 비디오아트 미술관은 ‘얼마나 지속할 것인가?’보다는 ‘얼마나 소통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가 도발적으로 제시한 미술관이 문을 닫는 연도는 다름 아닌 그의 작업과 미학이 충분히 이해되고 사랑받게 되는 시점이다. 백남준은 화석으로 굳어지기보다는 공기로 스며들고 싶었던 듯하다. 그의 이름을 내건 유일한 비디오아트 미술관인 백남준아트센터의 10주년을 맞는 질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안소현, 「백남준아트센터의 문을 닫기 위한 몇 가지 제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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