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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비릴리오, 질주정의 역사를 관통하는 '미래의 고고학', 드로몰로지

글 최소영

故 폴 비릴리오우리는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도를 찬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빠른 속도는 우리 사회의 자랑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인터넷 속도는 외국인들에게 내세울 만한 우리의 기술적 성취가 되었다.

사실, 근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속도’를 지적하는 사상가들은 많았다. 매체이론가 발터 벤야민은 ‘속도’라는 표현을 직접 쓰고 있지는 않지만 대도시의 혼잡이나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위험할 정도의 긴장 관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역사가 마르크 블로흐 역시 1930년대의 서구 문명에 대해 그 이전과 다른 점이 바로 ‘속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은 기술과 속도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 즉 전쟁을 찬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속도를 근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보고 있는 데 반해 이를 인간 문명의 본질적 속성으로 보는 사상가가 있다. 프랑스 출신의 매체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폴 비릴리오는 인류가 등장한 이후 속도는 늘 생존과 승리의 필수조건이었음을 지적한다. “속도는 사냥꾼이나 전사에게 언제나 우월함과 특권을 가져다줬다. 질주와 추적은 모든 전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모든 사회에서 속도의 위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벙커의 고고학(Bunker archéologie)』, 1975) 그리고 그의 논의의 맥락에서 ‘속도’는 ‘질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보다 맹목적이며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비릴리오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속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과 문명을 바라본다. 그는 첫 번째 저서 『속도와 정치』(1977)에서 이미 전쟁과 기술, 정치, 미디어의 관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해독한다. 역사의 진보는 무기 체계의 발전 속도에 비례한다고 주장하는 비릴리오에게 전쟁의 문제는 얼마나 더 빨리 질주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는 역사 초입에 유럽을 휩쓸었던 북방 민족의 침략에 의해 서구의 권력 집단이 탄생했다고 말하며 이를 ‘질주정의 역사’라 규정한다. 따라서 서구 역사는 침략자가 아무 구속 없이 이동하던 와중에 도로에서 탄생한 질주정의 권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권력과 조직의 속성은 그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채 서구 문화의 지층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했을 그 파괴적 속성을, 비릴리오는 불안하고도 예민한 시선으로 포착해 담론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나머지 내용은 본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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