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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캔버스에 서식하는 괴물들

글 유지원

이은새: 밤의 괴물들 | 10.5~11.4 | 대안공간 루프

이은새 〈밤의 괴물들-토〉 캔버스에 유채 227.3×181.8cm, 2018 이미지 제공: 대안공간 루프이은새의 《밤의 괴물들》은 만취했거나 멀쩡한 젊은 여성이 손쉬운 목표물이 되는 밤길에 출몰하는 ‘괴물들’을 소환한다. 이 괴물들은 물리적으로 강력하기보다 건드리면 어떤 기괴한 일을 벌일지 몰라서, 쉽게 보고 건드렸다가는 집요하게 좇아와 배로 갚아줄 것 같아서 모른 척 지나가고 싶은 존재들에 가깝다. 이들은 전혀 낯선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그런 친구가 하나쯤 있고 언젠가 스스로 마음속에 그 괴물을 품기도 한다. 그러니 이들의 정체에 대해 별도의 서사를 붙이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에 맡겨도 좋겠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 존재들이 캔버스를 누비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여 크기, 색, 그리고 명암 표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분노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정도를 몰라 너무 빨리 달리거나 너무 크게 말하는 이 존재들의 감각이 어떻게 캔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크다. 이들은 2m를 훌쩍 넘는 높이의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넓은 보폭으로, 대단히 큰 입으로. 150호 사이즈의 캔버스 앞에 다가서면 이들의 두껍고 거친 토사물은 물론 길을 개척해 낸 오줌 줄기를 그 질감까지 자세히 보아야만 한다. 강제하는 존재감, 주장하는 움직임. 눈싸움 중에 날아오는 눈덩이는 충분히 강력해서 맞으면 아플 것처럼(〈밤의 괴물들-눈싸움〉), 입을 한껏 벌리고 웃는 얼굴에서 나는 목소리가 무척 커서 골이 당길 정도로(〈밤의 괴물들-크게 웃는 여자들〉). 하지만 동시에 큰 사이즈 덕분에 그림의 부분들을 자의적으로 크롭(crop)해 보기에 수월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서면 될 일이다. 눈이 가는 대로 자르다 보면 각 조각이 그림 전체가 주는 에너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1/n이 되지 않고 그 자체로 1이 되는 부분들. 그것은 아마 그림의 필치, 굵고 지그재그로 치고 들어온 길고 좁은 면의 질감이 그림의 형상이 주는 운동성과 잘 대응되기 때문이다. 마치 보통의 인간보다 1.5배 정도 큰 존재가 속도감 있게, 수월하게, 큰 망설임 없이 그려낸 것 같은 흔적들은 밤의 괴물들이 내는 소리의 데시벨과 뿜어내는 에너지를 대변한다.
그다음은 색. 이은새의 그림이 그렇듯, 어떤 색을 사용해야 한다는 혹은 사용하면 안 된다는 강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밤의 괴물들》에서는 채도가 높은 색과 탁하고 어두운 색이 적절히 서로를 밀고 당겨주는 긴장감이 돋보인다. 가령 마른 회색빛 커다란 얼굴에 희번덕거리는 눈을 형광 핑크로 그려낸다든지(〈눈 비비는 사람〉), 엄한 표정에 두터운 손을 지닌 인물의 홍채가 명랑한 오렌지빛이라든지(〈밤의 괴물들-토〉), 머리를 풀어헤치고 철퍼덕 바닥에 누워 있는 몸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을 발하는 에메랄드빛 눈이라든지(〈밤의 괴물들-누은 사람〉). 이러한 색 사용은 언제라도 금방 모드를 바꿀 것 같은 유연성과 각 인물의 다중적인 성격을 구성하는 데에 기여한다. 더불어 이러한 색채의 충돌과 긴장은 다분히 ‘당파적’이라 ‘편가르기’의 효과를 발휘한다. 알만한 사람에게는 쾌감을 주고 영영 모를 사람에게는 위협적이다.

괴물들이 서식하는 밤. 그림자는 드리운다기보다 지그재그로 돋아 올라온다. 선명한 붓 자국으로표현된 빛과 어둠은 쉬이 섞이지 않는다. 더불어 빛이 차단되어 얼룩진 부근조차 저마다의 색으로 목소리를 낸다. 봉에 매달린 인물의 등줄기를 따라내려오는 푸른빛 음영, 그리고 그의 왼쪽 다리를 얹힌 주황빛 선들(〈밤의 괴물들-철봉 운동〉). 덕분에 스마트폰이나 모니터의 스크린으로 보아도 영락없는 회화다. 매끈한 이미지의 영역으로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밤은 더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인물의 동작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영역이다.

괴물들은 밤에 출몰하여 밤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회화를 그리고 보는 쾌감으로 반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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