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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민주주의의 무대적 보고서

글 김정아

로메오 카스텔루치 : 미국의 민주주의 | 11.3~4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로메오 카스텔루치, 〈미국의 민주주의〉 공연 스틸 ⓒGuido Mencari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장르의 구분에 연연하는 선긋기는 20세기에 끝났지만, 로메오 카스텔루치 작품의 장르를 묻는 이가 있다면 ‘전위극’이나 ‘다원극’ 같은 모호하고도 진부한 표현으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21세기에도 ‘전위’가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바로 로메오 카스텔루치다. 연출 겸 무대, 조명, 의상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며 ‘아방가르드 연출가’, ‘뉴시어터(New Theater)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연극 작품에서 주축이 되는 기존의 서사를 압축적이고 드라마틱한 시각 연출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사운드, 회화, 조각, 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끌어들이며 자신의 미학 세계를 확장해왔다. 그런 그가 익숙한 소통과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고,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는 신작 〈미국의 민주주의〉로 한국을 찾았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이다. 1830년대 미국을 방문한 토크빌이 미국의 높은 사회적 평등과 사라진 신분 차별을 목격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프랑스의 낙후한 정치 상황에 대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며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분석한다. 하지만 카스텔루치는 원작자의 시선을 따르지 않고 비틀어 해석했다. 토크빌이 선망했던 민주주의는 소수 인종을 차별하고 청교도주의로 무장한 채 폭력을 내재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당시 유럽에서 퇴색한 민주주의 정치 모형이 신세계 미국의 청교도주의에서 재탄생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한편,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등 위험과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카스텔루치는 민주주의가 태동한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가 그들의 ‘비극’에 기원을 둠으로써 민주주의의 출현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은 필연적인 또 다른 자아와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그늘로 표현되는 무대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스텔루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의 사례를 쫓아 스스로를 정치 이전의 시대로 데리고 간다. 그리스라는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우리는 이제 신이 외면한 제전에서 타지 않고 남은 잿더미 위를 맨발로 디디는 찰나의 불확정적인 순간을 지나, 인간이 만든 비극이 이미 시작된 줄도 모른 채 연극이 탄생하기 이전의 시대에 도착한다. 여전히 이름을 갖지 못한 망각된 제전의 기원을 추적하는 무대는 정치적 투쟁의 장(場)을 비추는 필연적이고도 모호한 거울이 되고, 모든 형태의 인간 사회를 반영한다는 연극의 원초적인 기능을 새로이 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흰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 방울을 단 여성 일행이 각각 알파벳이 있는 깃발을 들고 나와 스크래블 보드게임 하듯 단어를 조합하기 시작하는데, 첫 문장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다. 이어 앞 단어의 조합에 사용된 알파벳으로 만들 수 있는 각 나라 이름들과 엉뚱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나열되며 유머러스한 인트로를 연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시각적 구현에 치중하던 카스텔루치의 전작들과 달리 전통적 방식의 언어 사용(대사)이라는 서술 방식을 차용한다. 무대 위에 놓인 그리스의 프리즈(frieze) 조각 뒤로 사탕수수에서 코튼을 뽑아내는 노동자(죄수)의 계급 불평등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이 그것이다. 또 그 뒤를 잇는 오지브와족(Ojibwa) 인디언의 이야기에서는 미대륙 원주민들이 신대륙 이민자들로 인해 그들의 민족 언어(문화)를 잃고, 피부(영어)를 바꿔 입어야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때, “왜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담담한 질문에서는 베케트식 부조리함이 연상된다. 현대 민주주의 미학은 바로 이 부조리 위에 구축된 것임을 지적하듯 말이다. 이어지는 신대륙 이주자인 청교도 커플 씬에서 이 약속의 땅에서의 부조리는 극에 달한다. “말은 팔아 버렸고, 먹을 것은 썩은 감자밖에 없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나다니엘은 “신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믿음을 가져라. 아멘.”이라고 받아칠 뿐이다. 약속의 땅을 꿈꾼 이 커플은 결국 신에게 버림받는다. 마지막 장은 프롤로그에 대응하는 듯한 에필로그다. 흰 제복을 입고 나왔던 여성들은 시공간이 거세된 곳에서 〈봄의 제전〉의 이교도들을 연상시키는 민속춤을 추고, 이 미지의 행위는 무대를 불투명하게만드는 막으로 뿌옇게 처리된다.

에필로그가 암시하듯 작품은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보류하지만, 그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지며 민주주의의 계보학에 대한 얼개를 독창적인 비주얼로 완성해나간다. 서구 민주주의(그리스)의 미학, 그리고 그 철학적 뿌리로서의 연극(비극)은 모두 혼돈에 대한 인간의 태도, 삶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카스텔루치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와 연극은 둘 다 오래된 사회의 신념을 확인하는 구실을 하며, 바로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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