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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저만치 밀려오는 표석(標石)들

글 천수림

권순관 : The Mulch and Bones | 10.19~11.10 | 학고재갤러리

권순관, 〈파도〉, 디지털 C 프린트, 225×720cm, 2018 이미지 제공: 학고재갤러리권순관은 줄곧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름 없는 이들을 불러내고 있다. 그들이 묻힌 곳은 표석 하나 없는 야산이거나, 제주도 남부 해안의 어느 바닷가, 경계에 놓인 DMZ 같은 장소들이다. 학고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The Mulch and Bones》를 통해 작가는 다시 한번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보이지 않는 표석을 소환한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어둠의 계곡〉은 노근리 미군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표식이 없다. 대형 카메라로 담은 야산 일부는 얼핏 보면 야산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어둠에 잠겨 있다. 노근리 미군 민간인 학살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경부선 철로 위로 피난 중이던 주민들을 사살한 사건으로, 16시간 동안 300명이 학살당하고 겨우 20여 명만 생존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950년 8월 19일 『조선인민일보』가 처음 보도한 이후 44년 동안 언론에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 〈어둠의 계곡〉은 ‘가녀린 당신의 숭고한 빛’이라는 조명 장치를 통해 빛에서 어둠의 숲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도록 설치되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을 때 숲은 어둠의 계곡이지만, 빛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뭇잎은 하나하나 그 결이 느껴질만큼 살아서 움직인다. 어쩌면 당시 사살된 이들은
근처 야산에 여기저기 흩어져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할 때 그들이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막연히 상상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 제목인 《The Mulch and Bones》는 거름을 만들기 위해 부패시킬 때 덮는다는 의미를 차용한 것이다. 덮개는 마치 인간의 피부처럼 물질적이고도 실존적인 비유다. 그때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상상하며 작품 앞에 서지만, 그때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환영’처럼 떠도는 역사의 현장을 한번 대면해보는 것일뿐. 〈어둠의 계곡〉과 함께 전시된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2016)는 DMZ 내에 버려졌던 폐기물 스피커를 재활용해 설치한 것으로, DMZ 내에서 16시간 동안 들려오는 소리를 채집해 쌓아올린 것이다. 그 안에는 대남대북방송, 헬기소리 등 이념적 대결을 상징하는 소리들이 들어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파도〉는 총 7m에 이르는 대형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장엄한 파도 속으로 안내한다. 작가는 제주도 남부 해안 지역에서 촬영한 필름에 소금물이 들어간 뒤에 우연히 생긴 색변화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소리, 빛, 바람 등 감각적으로 전해오는 유동적인 모든 감각을 그대로 느꼈던 흔적들인 셈이다. 이 작품은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시 「바다의 묘지(Le cimetière marin)」를 읽으며 제주 4·3 항쟁 당시 학살당하고 바다에 버려진 희생자들을 떠올려 시작한 작업이다. 제주도 내에서도 1,000명이 넘는 양민들이 서귀포, 제주항 앞바다, 제주읍 비행장, 송악산 등지에서 집단으로 수장되거나 암매장 되었다. 4·3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는 2만 5천~3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민의 10%에 달하는 수치이다. 〈파도〉는 수장되기 바로 직전에 ‘바다’를 바라보았을 그들을 상상해본 작업으로, ‘그 사람이 되어보기’라는 연출적 기법을 통해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한 인간의 말할 수 없는 심경을 짐작해보려는 시도이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거대한 서사 안에는 분명히 이런 ‘침묵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은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라 짐작되는 공간에 직접 서봄으로써 ‘시각화’된다.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1983) 저자인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국가란 폭력의 역사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권순관은 국가폭력이라는 이 문제를 ‘침묵의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빛과 소리, 어둠, 파도 등 실제 감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통해 마치 환영처럼 보이는 역사라는 어슴푸레한 실체와 기어코, 대면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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